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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20일
2026-10-16 10:29:15
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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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실수를 선으로 바꾸시는 주님

 

일시 : 2026년 10월 20일

본문 : 사도행전 7:24-29

 

 

존 웨슬리는 18세기 영국의 복음주의 부흥을 이끈 설교자이자 감리교 운동의 창시자입니다. 그의 사역은 영국과 미국의 교회 역사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고, 이후 세계적으로 확산된 감리교의 출발점이 됩니다. 존 웨슬리는 영국 국교회 목사였던 아버지와 동일하게 경건한 신앙으로 살았던 어머니 아래에서 성장합니다. 귀한 가정 속에서 자랐을 뿐만 아니라, 옥스포드대학교에 진학하며 체계적인 신학을 공부하는 등 훌륭한 모습으로 자랐습니다. 그러나 그런 그도 훌륭한 모습만 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도 큰 실수를 저지른 적이 있습니다. 그는 1735년에 미국 조지아로 건너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소피아 홉키’라는 여성과 가까워집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녀와의 관계가 복잡해지고 그녀에 대해서 신앙적인 부분과 감정적인 부분이 얽히게 됩니다. 결국 웨슬리는 하나님께 묻지 않고, 감정적으로 그녀에게 성찬을 거부시키는 잘못된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그의 잘못된 결정은 큰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고, 결국 법정 재판을 앞두게 된 웨슬리는 미국에서 쫓겨납니다. 하나님께 묻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따른 그 선택이 결국 실패를 낳은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실패한 경험이 오히려 영적으로 깊은 고민을 하게 만드는 계기가 됩니다. 즉 그 고민은 존 웨슬리 삶에 아주 큰 회심 사건이었던 ‘알더스 게이트 회심 사건’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 웨슬리는 복음 전도 운동을 시작하는데, 이 운동이 바로 ‘감리교 부흥 운동’입니다. 이 운동으로 수십만 명이 복음을 듣게 되었고 영국 사회 전체에 영적 부흥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미국에서의 그의 실패가 영적 각성 운동의 시작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도 이와 같은 내용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1. 자신의 뜻이 앞섰던 모세

 

오늘 본문 24절에서 25절의 말씀은 스데반의 설교 중, 모세가 한 애굽인을 죽이는 내용입니다. 모세가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정체성을 깨달았다는 것은 단순히 자신이 ‘히브리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본문 2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통하여 구원해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용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이란 생각이 있었습니다. 즉, 그에게는 자기 동족을 구하려는 사명, ‘나의 삶의 목적은 바로 이것이다’라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제 본문인 23절에서는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볼 생각이 나더니”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형제들을 돌보고자 이스라엘이 고통받는 현장으로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동족 학대를 본 것입니다. 동족을 향한 그의 애정과 진심이 결국에는 분노로, 살인으로 이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모세가 품었던 마음은 너무 귀한 것이었지만, 그 방식은 옳지 못했습니다. 즉, 모세는 그 마음으로 먼저 동족에게 나아갈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께 여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 여쭙지 않았고, 자신의 방법과 방식대로 하나님의 일을 행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행했던 그의 방식은 하나님의 방식으로 진행했을 때와 너무나도 큰 차이를 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공식적으로 파송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시며 이스라엘을 구원하길 원하셨습니다. 즉, 그가 의지한 방법은 고작 ‘주먹’이었으나 하나님의 방법은 열 가지 재앙이었습니다. 그의 방법은 한 사람을 쓰러뜨렸으나, 하나님의 방법은 애굽의 권세를 꺾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열심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모습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 마음이 뜨거웠던 모세는 당장에 자신의 힘으로 동족을 돕고자 했지만, 그의 생각은 틀렸습니다. 우리도 때로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일을, 우리의 삶을 이끌어가길 원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의 방식보다 하나님의 방식이 훨씬 위대하다고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순간에도 우리가 나의 생각과 나의 방법보다 하나님의 뜻과 힘으로 나아가야 할 줄 믿습니다. 그래서 가장 아름답고 위대하며 가치 있는 삶을 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2. 모세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신 하나님

 

이어진 본문 26절에서 29절은 모세가 동족의 화해를 돕는 과정에서 그들에게 거부당하는 내용입니다. 26절을 보면 동족끼리 다투고 있는 모습을 본 모세가 “너희가 형제인데 어찌 서로 해치느냐”라고 만류합니다. 여기서 그가 싸움을 말리는 핵심은 ‘애굽에게 고통당하는 이 현실에서 우리끼리는 그러면 안 되잖느냐?’입니다. 그렇습니다. 현재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서로에게만큼은 그러면 안 되지 않을까요? 나아가 애굽 사람의 괴롭힘을 부당하게 여겼던 자들이 서로를 괴롭히고 해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모세의 마음과 그 내용이 너무 귀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모세는 그 진심을 무시당합니다.

그렇다면 왜 모세는 그 진심을 무시당했을까요? 그 이유는 그가 행했던 잘못된 일 때문입니다. 다투고 있었던 그들이 모세를 거부하는데, 그 이유는 그가 그런 말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입니다. 27절을 보면,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우리 위에 세웠느냐”라고 모세를 몰아붙입니다. 이것은 명백한 권위에 대한 거부로,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우리 문제에 개입하느냐? 네가 뭔데?’의 의미입니다. 나아가 28절에는 “네가 어제는 애굽 사람을 죽임과 같이 또 나를 죽이려느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세가 자신들을 책망하지 못하도록 모세의 범죄를 들이대며 역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당신은 어제 사람을 죽이지 않았는가? 그런 당신이 나에게 잘못을 지적할 수 있는가?”라는 의미입니다. 그런 말을 들었을 때, 과연 모세는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동족을 도우려 했지만, 그의 과거는 들통났고, 오히려 그들은 자신의 과거를 들추며 그를 거절합니다. 결국 어제 자신의 잘못이 오늘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안타까운 현실을 마주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놀라운 것은 무엇인가요? 하나님께서는 그의 실패를 그를 변화시키는 계기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는 실패했고, 도망쳤으나 하나님은 실패로 도망친 그 현실을 아름다운 내일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 연단을 통해 그는 더 나은 지도자가 되었고, 이스라엘을 잘 이끌었으며, 위대한 지도자로 기억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실패에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실패를 통해 더 아름답게 이뤄가시는 분이신 줄 믿습니다. 우리도 살아가다 보면, 모세와 같이 실수하고 실패할 때가 있고, 죄책과 절망으로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 실패에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며 오히려 그 실패로 더 나은 미래를 만드심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기억하여 어떤 실수와 실패의 순간에도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길 바랍니다.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 실패로 더 나은 미래를 만드실 하나님을 기억하며 우리가 기대와 소망으로 나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는 앞서 영국 대각성 운동의 시작이며, 감리교의 창시자였던, 존 웨슬리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소피아 홉키에 대한 성찬 거부라는 잘못된 목회적 판단으로 결국에는 분쟁에 휩싸이고 영국으로 떠났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 더 앞섰고, 결국에는 큰 실수를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모세도 웨슬리도 우리도 살아가다 보면,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 얼마든지 앞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어떤 판단을 할 때, 더욱 신중하게, 더욱 고민하고, 더욱 기도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또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웨슬리의 그 실패를 영국 대각성 운동의 시초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의 실패를 그의 회심의 계기로 삼으셨고, 그 회심이 영국 대각성 운동의 시작이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모세도, 웨슬리도, 우리도 실패할 수 있지만 염려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실패를 선으로 바꾸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실패의 순간에, 좌절하거나 절망하기보다 그 실패로 더욱 아름다운 미래를 만드실 주님을 바라봐야 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말씀을 따라 우리가 언제나 더욱 주님의 뜻을 구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때에도 우리가 그 실패를 통해 역사하실 하나님을 바라보며 나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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