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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7일
2026-10-12 14:05:17
꿈미
조회수   35

무엇으로 가득 차 있습니까?

 

일시 : 2026년 10월 17일

본문 : 사도행전 6:8-15

 

 

살면서 무언가에 깊이 몰입해 본 적이 있습니까?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다가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몰랐던 경험 말입니다. 분명 잠깐만 하려고 시작했는데 어느새 몇 시간이 지나 있기도 하고, 누군가 옆에서 말을 걸어도 잘 들리지 않을 만큼 집중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상태를 가리켜 ‘몰입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몰입이라는 것이 참 신기합니다. 어떤 일에 깊이 빠져들면 다른 것들이 잘 보이지 않기 시작합니다. 때로는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만큼 시간과 열정을 쏟기도 합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한 가지 일에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몰두하면 우리는 농담처럼 이런 말을 하기도 합니다. “저 사람은 정말 그것밖에 모르는 것 같아.” 그런데 저는 이 표현을 우리의 신앙에 한번 적용해 보고 싶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우리를 보면서 “저 사람은 정말 예수님밖에 모르는 사람 같아”라고 이야기한다면 어떨까요?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라는 비판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인에게 이보다 더 귀한 평가가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너무나 귀해서,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을 위해 살아가는 일에 자신의 삶을 기꺼이 내어드리는 사람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스데반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다가 사람들의 반대를 받았고, 결국 거짓 증인들의 고발로 공회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가 얼마나 어려운 상황에 놓였는가 하는 사실만이 아닙니다. 도대체 무엇이 스데반을 이렇게 살게 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스데반을 소개하면서 한 가지 특징을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바로 성령 충만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어떻게 살아갑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두 가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복음 앞에서 물러서지 않습니다.

 

첫 번째로,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복음 앞에서 물러서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성경은 스데반을 소개하면서 그가 은혜와 권능이 충만한 사람이었다고 말씀합니다. 앞선 5절에서는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라고 기록하고 있고, 오늘 본문 10절에서는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했다고 설명합니다. 누가는 스데반이라는 인물을 소개하면서 반복적으로 그가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 충만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는 성령 충만이라는 말을 들으면 특별한 감정이나 신비로운 체험을 먼저 떠올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은 단순히 뜨거운 감정을 느끼거나 특별한 능력을 경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을 얼마나 많이 소유하고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성령의 다스림을 받고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안에는 이미 성령께서 거하고 계십니다. 성령 충만이란 그 성령께서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다스리시도록 자신을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은 그렇게 성령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 9절과 1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른 바 자유민들 즉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할새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 스데반이 복음을 전하자 여러 지역에서 온 유대인들이 그와 논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스데반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성경은 그 이유를 스데반의 말솜씨가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가 ‘지혜와 성령으로’ 말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성령 충만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영적인 담대함입니다. 그저 목소리를 크게 내거나 상대방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분명하게 증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저는 여기서 우리 자신을 한번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에게도 예수님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까?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쉽게 대답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복음이 귀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정작 일상에서는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살아갈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루하루 감당해야 할 일들이 많다 보니 어느새 복음을 전하는 일은 우리의 관심에서 멀어지기도 합니다. 물론 복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상대방이 불편해하지 않을까, 관계가 어색해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주저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에게는 이런 두려움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지금 예수님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오늘 스데반을 보십시오. 그는 누군가 시켜서 마지못해 복음을 전한 사람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그의 삶을 붙들고 계셨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스데반에게 복음은 여러 관심사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기꺼이 내어드릴 만큼 귀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안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싶은 마음이 살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복음을 전할 용기만이 아니라, 복음을 사랑하는 마음도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의 은혜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아직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영혼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품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혹시 잘 때 잠꼬대를 합니까? 동료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그 목사님은 가끔 잠꼬대를 하는 편인데, 정작 자신이 잠꼬대를 했다는 사실은 잘 모른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그 목사님의 부인이 물었다고 합니다. “여보, 어젯밤에 무슨 힘든 꿈 꿨어?” 그래서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자다가 갑자기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다는 겁니다.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떠나갈지어다!” 그 이야기를 듣고 한참을 웃었는데 사실 무슨 꿈을 꿨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고 했습니다. 아마 꿈속에서 대적 기도가 필요한 어떤 상황이 있었던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고 나서 한편으로는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아, 그래도 목사가 꿈속에서도 기도는 하는구나.’ 싶어서 나름 안심이 된 것입니다. 물론 그 잠꼬대가 성령 충만의 증거는 아닐 것입니다. 다만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을 만났을 때 내게서는 무엇이 나올까?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상하거나 계획했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우리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입니까? 불평과 원망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찾는 기도입니까? 우리가 평소에 무엇을 의지하며 살아가는지는 그런 순간에 드러날 때가 많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자신감이 아니라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이렇게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성령님, 오늘 제 생각과 입술을 다스려 주십시오. 제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게 하시고, 복음을 전할 기회가 찾아왔을 때 두려움보다 믿음으로 반응하게 해 주십시오.” 저와 여러분이 오늘도 우리의 가정과 삶의 자리에서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사람 앞에서 굴복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로,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사람 앞에서 굴복하지 않습니다. 스데반이 복음을 전하자 사람들이 그와 논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하는 것을 당해 낼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전혀 다른 방법을 선택합니다. 오늘 본문 1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람들을 매수하여 말하게 하되 이 사람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 그들은 스데반의 말을 이길 수 없자 사람들을 매수하고 거짓 증인들을 세웠습니다. 이어서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하여 스데반을 붙잡아 공회로 끌고 갔습니다. 13절과 14절에서는 스데반이 성전과 율법을 거슬러 말했다는 증언까지 등장합니다. 누가는 이들을 분명히 ‘거짓 증인’이라고 부릅니다. 스데반이 전하는 복음을 듣기보다 그의 말을 왜곡하여 그를 제거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이 장면을 놀라운 말씀으로 마무리합니다. 1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공회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모두 스데반에게 시선을 집중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정확하게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람들의 적대와 거짓 고발 앞에 서 있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스데반과 함께하고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이 장면을 묵상하면서 우리가 얼마나 쉽게 사람들의 시선에 흔들리는 존재인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의식할 때가 많습니다. 누군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혹시 내가 손해를 보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앞서는 것입니다. 물론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평가가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중요해지는 순간, 우리는 믿음의 기준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가령 누군가가 내게 부당한 부탁을 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부탁을 들어주면 당장은 관계가 편해질 수 있지만, 거절하면 불편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하겠습니까? 사람과의 관계가 불편해지는 것이 두려워 옳지 않은 일에 동참할 것입니까? 아니면 조금 불편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길을 선택할 것입니까? 믿음은 예배당 안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선택 속에서도 드러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기 전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의 말이 아무렇지도 않아서 담대한 것이 아닙니다. 그 말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기 때문에 담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누군가 나를 오해하더라도 무조건 맞서 싸우기보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행동하고, 나를 비난하는 사람에게도 악한 말로 갚지 않으며,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로 행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령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믿음의 모습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의 스데반을 보면서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스데반이 성령으로 충만했다고 해서 그의 상황이 좋아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복음을 전하자 반대가 일어났고, 마침내 그는 공회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그를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성령 충만은 문제가 사라졌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문제가 여전히 우리 앞에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믿음의 길을 걸어가도록 붙들고 계신다는 은혜입니다.

혹시 오늘 아침에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가지고 이 자리에 나온 성도가 있습니까? 기도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고, 믿음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했지만 여전히 마음을 어렵게 만드는 일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스데반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스데반을 공회 앞에 세웠지만, 그 자리에서도 하나님은 그와 함께하고 계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서 있는 자리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이렇게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사람들의 말보다 주님의 말씀을 더 중요하게 여기게 해 주십시오. 제가 손해를 보거나 오해를 받는 상황에서도 믿음의 기준을 잃지 않게 해 주십시오. 무엇보다 제 힘으로 버티려 하지 않고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와 담대함으로 살아가게 해 주십시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붙들어 주실 때, 오늘 우리가 마주할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식하며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을 줄 믿습니다.

 

 

설교를 시작하면서 누군가 우리를 보고 “저 사람은 정말 예수님밖에 모르는 사람 같아”라고 이야기한다면 어떨지 물었는데요. 오늘 본문의 스데반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반대와 위협 속에서도 예수님을 증언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를 그렇게 살게 한 것은 남다른 의지가 아니라, 그의 삶을 붙들고 계셨던 성령님이셨습니다.

저는 스데반을 묵상하면서 손양원 목사님이 떠올랐습니다. 시대는 달랐지만 두 사람 모두 예수님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그분을 위해 살아가는 것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이러한 신앙을 「예수 중독자」라는 글에 담아 고백했습니다. “나는 예수 중독자가 되어야 하겠다! 술 중독자는 술로만 살다가 술로 인해 죽게 되는 것이고 아편 중독자는 아편으로 살다가 아편으로 인해 죽게 되나니. 우리도 예수의 중독자 되어 예수로 살다가 예수로 죽자. 우리의 전 생활과 생명을 주님 위해 살면 주 같이 부활이 된다. 주의 종이니 주만 위해 일하는 자 되고 내 일 되지 않게 하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무엇으로 가득 차 있습니까? 무엇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고, 우리의 삶을 움직이고 있습니까? 오늘 하루도 수많은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염려와 두려움보다 성령의 다스림을 구하기 바랍니다. 사람들의 시선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이 오늘도 성령으로 충만하여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고, 복음을 담대하게 증언하며,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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