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일시 : 2026년 10월 16일
본문 : 사도행전 6:1-7
주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거나 교회에 한번 나와 보라고 권해 본 적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종종 이런 대답을 듣습니다. “저도 예전에 교회 다녔어요.” 여기까지 들으면 반갑습니다. 그런데 그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좀 안 좋은 일이 있었어요.” 사람 때문에 상처를 받았다는 분도 있고, 교회 안에서 있었던 어떤 일 때문에 실망해서 더 이상 나가지 않는다는 분도 있습니다. 그럴 때 참 안타깝습니다. 물론 교회는 세상과 달라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품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교회 안에서 받는 상처가 더 크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다른 곳도 아니고 교회에서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하는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어 보면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라고 해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심지어 초대교회에도 갈등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사도행전을 보면 초대교회는 정말 아무런 문제 없이 세워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성령이 임하고, 베드로가 말씀을 전하자 삼천 명이 회개하고, 성도들은 서로의 필요를 채워 주며 함께 살아갑니다. 박해가 시작되어도 복음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어제 말씀에서도 사도들은 채찍질을 당하면서도 예수님을 전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6장에 들어오자 교회 밖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그 주제는 뜻밖에도 ‘구제’였습니다. 1절을 보면 헬라파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서 빠지고 있다며 히브리파 사람들을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헬라파와 히브리파는 모두 예수님을 믿고 한 교회가 되었지만 언어와 문화적 배경에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본문은 이것이 의도적인 차별이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누락되는 사람들이 있었고 결국 원망이 생겼습니다. 사랑을 나누기 위해 시작한 구제가 오히려 갈등의 이유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오늘 본문의 마지막입니다. 이렇게 문제가 생겼는데도 7절은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라고 말씀합니다. 문제가 생겼는데 말씀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자라났습니다. 그렇다면 초대교회는 어떻게 이 문제를 통과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 왕성해질 수 있었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두 가지를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1. 본질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첫 번째로 교회는 문제가 생길수록 본질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문제가 생기자 열두 사도는 모든 제자를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이 말씀만 읽으면 사도들이 구제하는 일을 중요하지 않게 생각한 것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이 문제가 중요하지 않았다면 그냥 넘어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들은 즉시 공동체를 모았고, 이 일을 제대로 감당할 사람들을 세우도록 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들이 말하는 것은 구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닙니다. 중요한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그 문제에 모든 것을 쏟다가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맡기신 가장 중요한 사명까지 놓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헬라어 원문을 보면 조금 더 분명해집니다. 1절에서 매일의 ‘구제’를 가리키는 단어가 ‘디아코니아(διακονία)’입니다. 그런데 4절에서 사도들이 말하는 ‘말씀 사역’에도 똑같이 ‘디아코니아’라는 단어가 사용됩니다. 하나는 필요한 것을 나누는 섬김이고 다른 하나는 말씀을 섬기는 사역입니다. 둘 다 섬김이고, 둘 다 교회에 필요한 일입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맡기신 역할이 달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4절에서 말합니다.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여기에서 ‘힘쓰리라’는 말은 ‘프로스카르테레오(προσκαρτερέω)’라는 단어에서 왔는데, 어떤 일에 계속 머물고 전념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모습이 참 중요합니다. 사도들은 문제를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문제에 온통 붙잡히지도 않았습니다. 해결해야 할 것은 해결하면서도 자신들이 계속 머물러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기도와 말씀의 자리였습니다.
왜 이것이 중요합니까? 오늘 본문의 마지막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이 교회 안에서 계속 자라가야 할 것은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7절은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라고 말씀합니다. ‘왕성하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아욱사노(αὐξάνω)’, 곧 ‘자라다, 성장하다’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누가는 마치 씨앗이 땅에 심겨 계속 자라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 자라갔다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만약 사도들이 이 문제에만 온통 붙잡혀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문제를 해결하느라 정작 말씀과 기도의 자리를 잃어버렸다면 교회는 눈앞의 문제 하나는 해결했을지 모르지만 더 중요한 것을 놓칠 수도 있었습니다. 사도들은 문제를 외면하지 않았고, 그 문제보다 중요한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기도와 말씀의 자리를 지켰고, 하나님의 말씀은 계속해서 자라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어느 순간 그 문제가 우리 마음의 중심을 차지할 때가 있습니다. 눈을 뜨면 그 생각부터 나고,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계속 생각합니다. 물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를 해결하려다가 정작 놓쳐서는 안 되는 것까지 놓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앞에서 우리 자신에게 한번 물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지금 이 문제 앞에서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문제가 있기 때문에 말씀을 뒤로 미루고 있지는 않습니까? 마음이 복잡하다는 이유로 기도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도들은 문제가 없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문제 속에서도 무엇을 붙들어야 하는지를 알았던 사람들입니다. 문제가 있기 때문에 말씀을 놓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있기 때문에 더욱 말씀 앞에 서고, 마음이 복잡하기 때문에 기도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욱 하나님 앞에 머무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오늘 이 새벽에 이 자리에 나온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해결되어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것이 있지만 다시 말씀 앞에 앉고, 내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다시 기도의 자리로 나온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놓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2. 사람을 바르게 세워야 합니다
두 번째로 교회는 사람을 바르게 세워야 합니다. 사도들은 자신들이 기도와 말씀에 힘쓰겠다고 말하고 끝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생긴 문제는 누가 감당해야 합니까? 3절을 보겠습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여기에서 사도들이 제시한 기준이 참 흥미롭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매일의 구제를 담당할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일을 빠르게 처리하는 사람, 계산을 잘하는 사람, 행정력이 좋은 사람을 먼저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들이 제시한 기준은 달랐습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들이 맡아야 할 것이 단순히 음식을 나누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공동체 안에는 원망이 생겼습니다.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마음의 틈이 생길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니 이 일을 감당하려면 사람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어야 했고, 서로 다른 입장을 지혜롭게 살필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단지 일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사람들에게도 인정받는 사람을 세우도록 했습니다. 공동체는 스데반과 빌립을 비롯한 일곱 사람을 선택했고, 사도들은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안수하여 일을 맡겼습니다. 결국 초대교회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단순히 좋은 제도를 하나 만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일을 감당할 사람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를 더 생각해 보게 됩니다. 오늘 말씀은 교회가 어떤 사람을 세워야 하는지를 보여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사용하시는지도 보여줍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사람들에게도 신뢰받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3절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시선이 나 자신에게로 돌아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만한 사람으로 세워져 가고 있는가?” 우리는 문제가 생기면 자꾸 방법부터 찾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무엇을 바꾸어야 하지?” 그런데 오늘 본문은 방법보다 먼저 사람을 세웠습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감정에 끌려가는 사람이 아니라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 자기 생각만 앞세우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사람, 다른 사람에게도 신뢰받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하나님께 계속 문제를 바꾸어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문제를 통과하면서 먼저 우리를 바꾸어 가고 계실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상황이 언제 달라질까?”를 묻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는 이 상황을 지나면서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느냐?”라고 물으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중요한 일을 맡았는가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일을 내가 어떤 사람으로 감당하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성령 충만과 하나님의 지혜는 특별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오늘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살아가기 위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사람을 세웠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다시 7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계속 자라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누가가 그 결과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제자의 수가 더욱 많아졌고, 심지어 많은 제사장들까지 이 믿음에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1절을 생각해 보십시오. 거기에서도 제자의 수가 많아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장이 커지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자칫하면 그 문제가 공동체를 갈라놓고 복음의 전진까지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문제 속에서 본질을 놓치지 않았고, 그 문제를 감당할 사람들을 바르게 세웠습니다. 그 결과 문제 하나가 해결된 것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 자라갔습니다. 이것이 참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문제가 전혀 없는 교회를 통해서만 일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가 생겨도 그 문제보다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고, 그 문제 앞에서 성령과 지혜로 반응하는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자라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서두에서 우리가 복음을 전하다 보면 “저도 교회에 다녀 봤는데 교회에서 상처를 받았습니다”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된다고 했는데요. 오늘 본문을 보면 초대교회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초대교회에도 문제가 있었으니 지금 교회에 문제가 있는 것도 당연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더 중요하게 보아야 할 것은 그다음입니다. 초대교회는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문제를 외면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문제에만 매몰되지도 않았습니다. 기도와 말씀이라는 본질을 붙들었고, 그 문제를 감당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들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원망으로 시작했던 이야기가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라는 말씀으로 끝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교회가 교회다운 모습은 문제가 전혀 없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생겼을 때 무엇을 놓치지 않는가, 그리고 그 문제를 통과하면서 어떤 사람들이 세워지는가에서 드러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오늘 이 말씀은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에게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문제가 빨리 없어지기를 기도합니다. 당연히 그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한 가지를 더 기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이 문제 때문에 제가 하나님을 놓치지 않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이 문제를 지나면서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사람으로 저를 세워 주십시오.” 그래서 오늘 두 가지 질문을 마음에 품고 하루를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지금 이 문제 앞에서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이 문제를 지나면서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가?’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문제를 지나오는 동안 내 안에서는 무엇이 더 자라고 있는가?’ 원망이 더 커지고 있습니까? 상처가 더 커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서 더 깊이 뿌리내리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더 자라나고 있습니까? 어쩌면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해결은 상황 하나가 바뀌는 것보다 더 깊을 수 있습니다. 문제를 통과한 내가 이전보다 말씀을 더 붙드는 사람이 되고, 이전보다 기도하는 사람이 되고, 이전보다 성령의 지혜를 구하는 사람으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난 뒤 그 문제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더 크게 자라 있기를 바랍니다. 문제와 상처와 원망이 우리의 마지막 말이 아니라, 오늘 본문의 마지막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라는 고백이 우리 교회와 우리의 삶 가운데 남게 될 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 은혜를 경험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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