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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8일
2026-10-04 06:47:22
꿈미
조회수   77

손가락을 넘어 예수님을 보라!

 

일시 : 2026년 10월 8일 목요일
본문 : 사도행전 3:11-26

 

 

고사성어 중에 ‘견월망지(見月望指)’라는 말이 있습니다. ‘달을 보라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더니, 정작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쳐다본다’라는 뜻입니다. 핵심을 놓쳐버린 어리석음을 꼬집는 말입니다. 달을 온전히 보려면 손가락에 머물러 있는 시선을 거두어야 합니다. 손가락에 주목하는 한, 결코 달을 볼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딱 이와 같은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베드로가 성전 미문에 앉아 있던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던 자’를 일으키는 놀라운 기적을 행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행하셨던 치유의 역사가, 이제는 성령으로 충만한 제자들을 통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모습입니다. 즉, 이 기적은 제자들 개인에게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직 성령의 권능으로 행해진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사건이 가리키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못하고, 손가락에 불과한 베드로와 요한에게 주목했습니다. 사람들은 두 사도를 붙잡고 이 일이 도대체 어떻게 일어났는지, 대체 이 일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웅성거리며 솔로몬의 행각으로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만약 오늘날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요? 방송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이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수많은 기자가 몰려들 것입니다. 그리고 ‘과연 베드로가 무슨 말을 할까?’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마이크를 들이밀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모든 사람의 시선이 집중된 상황 속에서, 베드로는 대체 무엇을 전했을까요? 오늘 베드로의 선포를 통해 우리가 시선을 두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함께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1.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드러내야 합니다.

 

성전 미문에 앉아 있던,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던 자가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 4장 22절을 보면 이 사람의 나이가 ‘사십여 세나 되었다’고 증언합니다.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 번도 걷지 못했던 사람이 일어났으니 얼마나 경이로운 사건입니까? 당연히 사람들은 기적을 일으킨 베드로의 입술에 주목했습니다.

그런 무리 앞에서 베드로는 단호하게 외칩니다. 본문 12절입니다.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12절) 베드로는 분명하게 선을 긋습니다.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이나 경건으로 행한 일이 아니다!’ 베드로는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사람들의 시선과 갈채를 단 1%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기적을 행하신 주체가 자신이 아님을 명백히 선언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적의 참된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밝힙니다. 본문 16절입니다.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16절)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분의 권능이 이 사람을 온전하게 고쳤다고 선포합니다.

베드로는 오직 예수님만 나타냈습니다. 만약 베드로가 여기서 조금만 침묵했다면 어땠을까요? 베드로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을 것이고, 그를 영웅처럼 추앙하는 무리가 생겨났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르듯 베드로를 따라다녔을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자신이 마치 구원자인 양, 재림 예수라 자처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거짓 교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성경 속 믿음의 선진들은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영광을 가로채지 않았습니다. 세례 요한이 그러했습니다. 수많은 무리가 자신을 따를 때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요한복음 3장 28절과 30절입니다.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요 3:28),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

바울과 바나바 역시 루스드라에서 나면서 걷지 못하던 자를 일으켜 세웠을 때, 사람들이 자신들을 ‘제우스’와 ‘헤르메스’ 신으로 섬기려 하자 옷을 찢으며 부르짖었습니다. 사도행전 14장 15절입니다.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행 14:15)

사랑하는 여러분, 성도의 삶이 바로 이와 같아야 합니다. 우리 역시 삶 속에서 크고 작은 열매를 맺을 때가 있습니다. 내 이름이 알려지고, 사람들에게 칭찬과 인정을 받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바로 그때 우리는 교만의 유혹을 가장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입니다. 손가락 자체가 빛을 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2b) 말씀하셨던 것처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고 주님께로 인도하는 거룩한 통로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2. 말씀이 죄를 드러낼 때, 정직하게 회개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사람들의 시선을 예수님께로 돌린 후, 그 자리에 모인 이들의 양심을 찌르는 말씀을 담대히 선포합니다. 본문 14-15절입니다.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14-15절) 그곳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 “너희가 바로 생명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라며 숨겨진 죄를 정면으로 지적한 것입니다.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하고 직언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기분 나빠하지 말고 들어!” 벌써 기분이 안 좋습니다.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이야기야!”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너는 다 좋은데 이게 문제야” 다 좋지 않다는 말로 들립니다. 누군가의 잘못을 직언하는 것도 쉽지 않고, 그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더 어려운 일입니다. 하물며 대중 앞에서 그들의 죄를 지적하고 있으니, 베드로에 대한 반발이 얼마나 컸을까요?

그러나 말씀이 선포될 때, 우리의 감춰진 죄는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우리의 죄는 낱낱이 드러납니다. 이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합니까? 베드로는 본문 19절에서 마땅히 우리가 해야 할 반응을 제시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19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변명하거나 숨기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를 사할 능력이 없습니다. 용서는 오직 피해자이신 하나님께만 속한 권한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거창한 대가나 공로가 아닙니다. 바로 말씀 앞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가슴 아파하며 돌이키는 참된 회개입니다. 우리가 정직하게 돌이켜 엎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죄를 사하여 주실 뿐만 아니라, ‘새롭게 되는 날’을 선물로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전 미문에 앉아 있던, 나면서부터 못 걷던 자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군중은 기적의 근원이신 예수님이 아니라 베드로를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동일한 유혹이 찾아옵니다. 조금만 침묵하면, 나를 조금만 포장하면 내가 영광을 누릴 수 있는 유혹 앞에 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드러내는 사람입니다. 나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와 은사는 오직 주님을 높이라고 주신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말씀의 거울 앞에 설 때, 내 마음을 찌르는 말씀이 있다면 외면하지 마십시오. 정직하게 엎드려 회개하기를 축복합니다.

기적을 구경하는 자리에 머물러 있지 마십시오. 오늘 이 아침, 기적의 근원이시고, 나를 새롭게 하시는 예수님께로 나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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