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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4일
2026-10-09 21:54:16
꿈미
조회수   77

순종으로 증명되는 신앙

 

일시 : 2026년 10월 14일
본문 : 사도행전 5:12~3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은 늘 선택의 연속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서부터 밤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작게는 오늘 무엇을 먹을 것인가 하는 일상의 선택부터, 크게는 직장과 사업장에서 중대한 결정을 내리며, 때로는 신앙을 따를 것인지, 아니면 타협할 것인지 끊임없이 선택합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은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기도하며 전진해야 할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선택의 순간마다 우리 마음과 생각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무엇입니까? 혹시 신앙의 자리를 선택했을 때 나에게 손해가 오지는 않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이 우리 안에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세상의 관습과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 그 어떤 소리보다 크고 명확하게 들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할 때가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본문은 진정한 신앙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진짜 믿음, 진짜 신앙은 주일에 성경을 들고 예배의 자리에 앉아 있을 때 증명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풍성한 지식이나, 입술로 고백하는 매끄러운 기도만으로도 온전히 입증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의 진짜 실력은 무엇입니까? 세상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충돌할 때, 그 선택의 자리에서 '과연 누구에게 순종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그 순간, 비로소 증명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사도행전 5장의 말씀은 초대 예루살렘 교회가 세상의 거대한 기득권 세력이었던 유대 최고 의결 기관 '산헤드린 공회'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긴박한 현장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쪽에는 당대 최고 권력과 법적 통제권을 가진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이 서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세상적 배경도, 무기도 없는 평범한 사도들이 서 있습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이 싸움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편을 선택하여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믿음을 선포하는 사도들의 모습. 은혜의 모습을 함께 묵상하길 원합니다.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본문 29절의 말씀과 같이 거대한 세상 속에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순종의 자리를 선택하고 나의 온전한 신앙을 증명할 수 있는지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순종하면 승리한다

 

앞선 본문의 내용을 통해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이 비극이 아닌 교회의 거룩함을 회복하는 시작이 되었음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을 통해 놀라운 표적과 치유의 역사가 일어남을 볼 수 있었습니다. 병든 이들과 귀신 들린 이들이 깨끗함을 받았고, 예루살렘 거리는 감사와 찬송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이뿐 아니라 성도들과 온 예루살렘 민중이 사도들을 칭송하고 존경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바로 이때, 당대 최고의 종교 지도자였던 대제사장과 사두개인의 당파가 일어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본문 17절입니다.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그들의 상태를 본문은 한 단어로 요약합니다. 바로 '시기'가 가득했다는 것입니다. 단순한 개인적 질투가 아닙니다.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은 민중의 존경이 사도들에게 쏠리자 자신들의 공적 명예와 종교적 기득권이 흔들린다는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꼈습니다. 더욱이 사두개파는 부활이나 천사의 존재를 믿지 않는 현실주의자들이었습니다.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선포하는 것은 그들의 신학적 정통성과 로마 제국과의 평화적 협약을 뿌리째 흔드는 위험한 도발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사도들을 잡아다가 지금의 경찰 구금 시설과 같은 '공중 옥'에 가두고 중범죄자로 낙인찍으려 합니다. 이를 통해 민중과 격리하고, 힘으로 그 입을 막으려 한 것입니다.

그러나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인간이 세운 감옥과 단단한 족쇄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19절을 보면 밤중에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사도들을 자유케 한 것입니다. 그리고 주의 사자가 내린 명령은 이것입니다. 20절입니다.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나님의 명령은 탈옥과 도주가 아닙니다. 오히려 적진의 한복판, 기득권자들의 관할이자 가장 위험하고 공개적인 장소인 '성전'으로 다시 들어가라고 명하십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도들을 감옥에서 건져내신 목적이 안전을 선택하라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말씀'을 온 세상에 선포하는 그 복음 증거의 사명을 선택하라고 인도하신 것입니다. 이에 사도들은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 즉시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쳤다고 말씀은 기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순종하면 승리합니다. 하나님은 이 선택의 사건을 통해 세상의 권력이나 위치가 아니며, 물리적 통제도 아닌 오직 하나님의 복음을 선택할 때,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사람들을 결코 가둘 수 없음을 천하에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우리 역시 이러한 순종의 승리를 맛보는 성도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2. 거룩한 우선순위

 

감옥에 있어야 할 사도들이 성전에 있음을 알게 된 기득권자들은 성전 경비대원들을 시켜 사도들을 끌어내고 공회에 세웁니다. 그때 대제사장이 서서 호통을 치는 내용이 28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르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대제사장의 이 짧은 말 속에는 분노와 함께 깊은 내면적 두려움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먼저는 무엇이 나타납니까? 대제사장은 '예수'라는 이름을 감히 입에 올리지도 못하고 ‘이 이름’, ‘이 사람’이라는 완곡한 표현을 씁니다. 예수라는 이름 자체를 멸시하는 태도인 동시에, 그 이름이 가진 영적 권위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또 한 가지는 무죄하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그 사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28b절) 사도들의 담대한 선포, 복음의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무죄를 증명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렇기에 대제사장은 도덕적·법적 책임을 사도들에게 떠넘기며 면피하려 한 것입니다. 이보다 더 비열하고 처절한 모습이 또 있습니까?

이러한 때에 거룩한 우선순위를 보여주는 베드로와 사도들의 신앙 고백이 선포됩니다. 29절입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한 구절은 세상의 법과 권력, 세속적 가치관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과 그 명령에 순종해야 하는 믿음의 우선순위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기본적으로 세상의 질서와 법을 준수하고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성숙한 시민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권력이나 조직의 관습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정직과 정의를 버리라 강요하며, 복음의 진리를 막아설 때는 어떡해야 합니까? 세상의 소리가 아닌 하나님의 목소리에 순종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사두개인들의 눈치를 보지 않았습니다. 감옥에 다시 갇히거나 매를 맞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이 곧 '하나님의 명령을 저버리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순종은 말만의 순종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한 진짜 순종이었습니다. 나와 우리 가정은 이와 같은 거룩한 순위를 따라 살아가고 있습니까?

 

3. 순종의 십자가

 

베드로는 자신들을 심문하는 산헤드린 공회원들을 향해 복음의 핵심을 거침없이 선포합니다. 십자가에만 순종하기로 결단한 것입니다. 본문 30절과 31절입니다.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이 선포 속에는 놀라운 반전이 숨어 있습니다. 구약의 신명기 21장 23절에는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산헤드린은 예수님을 가장 수치스럽고 저주받은 죄인으로 낙인찍어 십자가에 달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선포에 따르면 이 예수님을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셨습니다. 인간이 저주하여 죽인 그 예수님을 하나님은 다시 살리셨습니다. 오른손으로 높이시고 임금과 구주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오히려 이스라엘은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게 하신 반전의 은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세상 황제나 대제사장이 진짜 주권자가 아니라, 너희가 죽인 예수님만이 우주의 진짜 왕이시요 구원자이시다.’ 담대히 선포한 것입니다. 이는 원수들에게조차 회개하고 용서받을 수 있는 은혜의 길이 열려 있음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복음이 가진 위대함입니다. 나와 우리 가정은 어떤 상황과 관계 안에서도 끝까지 십자가 앞에 순종하며 이를 선언하는 인생을 살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더욱이 이 모든 십자가의 구원에, 증인이 되는 순종의 십자가를 지고 나아가야 할 줄 믿습니다. 마지막 32절입니다.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행전 5장 본문을 통해 세상의 거대한 권력과 위협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담대히 복음을 선포했던 사도들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2천 년 전 예루살렘 성전과 감옥에서 일어났던 이 사건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지금 누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신앙은 과연 순종으로 증명되고 있는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가운데 사도들과 같이 신앙을 이유로 투옥되거나 물리적인 해를 입을 일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형태만 다를 뿐, 세상의 압력은 여전히 우리의 순종을 방해하고 때로는 위협할 때가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직장에서 부조리와 거짓을 강요받거나 “정직이 곧 손해이다.” 말하는 세상 논리, 인간관계 속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려 할 때 받게 되는 오해와 냉소는 우리를 늘 시험에 들게 합니다. 이러한 때에 오늘 마지막 32절을 꼭 묵상하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하나님께서는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성령을 허락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진짜 살아계셔서 역사하고 계심을 마음속에 일깨워 주시고, 권능을 주시는 거룩하신 증인이 되어 주십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은 결코 홀로 외로운 신앙의 싸움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발을 내디딜 때, 자신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함께 증언하고 계심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과 십자가의 증인이 되고, 이에 순종하는 삶은 믿음의 성도에게 선물로 주어지는 성령님과 손잡고 함께 걸어가는 동역의 삶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작은 발걸음을 떼는 순간,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기 시작하십니다. 지혜를 주시고, 담대함을 주시며, 피할 길을 열어주십니다. 매일 아침 "성령님, 오늘 하루도 내 삶의 주인이 되시고, 말씀에 순종하는 용기를 주옵소서", 기도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람의 소리보다 하나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두려움을 넘어 말씀에 순종하여 삶의 현장으로 담대히 걸어가는 인생, 우리의 삶을 통해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위대한 구원의 역사를 계속해 나가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인생을 살길 축복합니다.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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