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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2일
2026-10-08 14:23:01
꿈미
조회수   74

삶으로 증명하는 공동체

 

일시 : 2026년 10월 12일
본문 : 사도행전 4:32~3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을 살다 보면 우리는 다양한 모양의 사람들을 만납니다. 우리가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을 때,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느끼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사람의 마음’을 다 알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의 마음을 함께 모으는 일만큼 어려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서로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 다른 경험을 하며 자라고, 생각과 성격, 심지어 가치관까지 완전히 다른 수많은 사람이 모여 완벽한 하나를 이룬다는 것은 가능하겠습니까? 인간의 힘과 노력으로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심지어 가정 안에서도 부부와 자녀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사도행전 4장 말씀은, 사람의 상식과 능력을 뛰어넘어 수많은 성도가 완전한 하나를 이루었던 경이로운 역사적 현장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당시 초대교회를 둘러싼 외적 환경은 결코 평안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앞 단락인 사도행전 4장의 31절까지의 내용을 살펴보십시오. 베드로와 요한은 종교 기득권층으로부터 예수의 이름을 언급하지도, 가르치지도 말라는 강력한 위협과 핍박을 받았습니다. 언제라도 감옥에 갇히고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핍박의 바람이 불어오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위기의 때에 초대교회 성도들이 분열하지 않았다는 것과 하나의 마음으로 모였다는 것은 사람이 한 일이 아님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을 통해 합심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고, 또 기도할 때 성령 하나님께서 초대교회에 충만하게 임하신 그 감격을 살피기를 원합니다. 또한 그 결과, 거센 시련에도 인간의 머리로 설명할 수 없는 강력한 사랑의 연합이 일어났음을 함께 묵상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이 그 성령 충만의 결과로 하나 되는 성도의 모습과 또 하나님 나라와 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함께 살피며 은혜 받기를 소망합니다.

 

1. 한마음과 한뜻

 

본문 32절은 기록합니다.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32절) 성도 여러분, 본문은 가장 먼저 성도들을 향해 ‘믿는 무리’라고 부릅니다. 헬라어 원어의 의미를 보면 이는 단순히 교회에 왔다 갔다 하는 구경꾼이나 관람객 같은 무리를 일컫지 않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인격적으로 고백하는 자’를 부를 때 쓰는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이 믿는 무리는 어떤 자들입니까? 바로 자신의 삶 전체를 주님께 온전히 내어 맡기기로 결단한 사람들, 참 성도를 일컫는 것이지요. 바로 이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뜻’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참된 성도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헬라어로 마음은 ‘카르디아'입니다. 인간의 지정의(知情意)가 모여 있는 인격의 가장 깊은 중심이 이 마음, ’카르디아‘인데요. 이것을 하나로 모은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이지요. 그러나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예배의 구경꾼, 관람자가 아닌 온 마음과 뜻을 모아 인격의 중심과 삶의 목적까지도 하나로 모으기에 힘썼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한 방향으로 의심 없이 담대하게 한 걸음씩 전진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아니지만 구약의 예레미야 32장 39절과 에스겔 11장 19절에서도 이 한마음과 한뜻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합니다. 이것은 사람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언약 백성들에게 ’한마음을 주고 새 영을 주겠다‘ 약속하신 것입니다. 성도들을 하나 되게 하신 것은 이미 구약 시대부터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고, 초대교회에 이르러 성취하신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였음을 우리는 묵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 됨은 물건과 소유한 재물을 통용하는 데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당시 초대교회가 존재했던 헬라·로마 사회에서 무엇인가를 통용, 나눈다는 것은 신분과 계급이 동등하거나 비슷한 기득권층 사이에서만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초대교회가 보여준 하나 됨과 통용, 공유는 어떠합니까? 세상의 교류와는 급이 다른 것입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 안에는 귀족도 있었고 노예도 있었으며, 유대인과 헬라인, 부자와 가난한 자가 섞여 있었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조건으로는 절대 하나 될 수 없는 이들이 성령 안에서 완벽한 통일을 이루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오늘날 우리가 속한 교회와 가정, 순 모임 혹은 구역 모임 안에서도 성격과 배경이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러한 우리가 온전히 하나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내 생각과 논리로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취향과 형편이 같은 사람을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친히 묶어 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성령께서 계획하셔서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시며, 또 몸 된 교회로 묶어 주신다면, 그 역사하심을 통해 비로소 한마음과 한뜻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본문 33절과 같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큰 은혜의 공동체로 세워져 갈 것입니다.

 

2. 청지기의 삶

 

그렇다면 성령 안에서 한마음이 된 성도들에게 보이는 또 다른 변화와 은혜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본문 34절과 35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우리가 이 구절을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초대교회의 나눔은 사유재산을 강제로 몰수하거나 금지하는 제도가 아니었습니다. 법적인 소유권 자체는 개인에게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성도들의 마음속에 ’이 재산의 진짜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나는 잠시 맡아 관리하는 자일 뿐이다‘라는 거룩한 고백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밭과 집을 팔아 가난한 자, 필요한 자에게 나누어 주는 자발적 섬김과 헌신이 기록된 것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니 주신 것을 맡은 청지기의 마음으로 "이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라는 고백을 실천한 것입니다.

특별히 34절에 자발적 헌신과 섬김의 결과, ‘값’이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소유를 팔아 가져온 물질, 구제에 사용하기를 원한 이 '값'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분명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갚기에는 터무니없이 모자라고 또 모자란 ‘값’일 것입니다. 그렇게 구원의 감격과 감사가 넘치기에, 자발적으로 드린 헌신의 결정체 또한 소중한 ‘값’이었음을 묵상하면 좋겠습니다. 값없이 얻은 최고의 구원이기에 자신의 소유를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고, 필요한 자들에게 흘러가도록 했습니다. 이름도 남기지 않고 오직 하나님과 교회에만 영광이 되도록 자신의 소유를 사용한 ‘청지기의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에게도 이와 같은 청지기의 삶이 나타나기를 소망합니다.

 

3. 위로의 아들, 바나바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 이례적으로 사람의 이름이 기록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도들이 ‘위로의 아들’이라 일컬은 바나바입니다. 사도행전의 기록자 누가는 원래 이름이 ‘요셉’인 바나바를 향해 그 애착의 마음을 상세한 기록으로 표현합니다. 36절 상반절입니다.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36절의 바나바의 배경에 대한 기록은 매우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 바나바의 출신 배경인 구브로는 어떤 곳입니까? 지중해 동부에 위치한 풍요로운 섬입니다. 농업과 무역이 발달했으며 재정적으로 매우 부유한 지역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디아스포라 레위인이었던 바나바는 구약 시대와는 달리 사유지를 소유할 수 있었고, 그에게 유복한 환경이 허락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유대인이자 허락된 환경의 복을 흘려보내는 바나바가 초대교회에서 ’위로의 아들‘ 칭호를 얻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위로의 아들‘이라는 의미를 좀 더 이해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헬라어 원어로 표현하면, 놀랍게도 '위로'를 뜻하는 헬라어 ’파라클레시스‘는 성령 하나님을 뜻하는 '파라클레토스'와 어원이 같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도록 주관하신 분은 성령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리고 그 성령님의 마음을 품고 지체들에게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를 전해 주었던 ’위로의 아들’ 바나바는 하나님이 사용하시기에 좋은 일꾼이며, 그가 은혜와 위로의 통로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바나바의 헌신과 실천은 가난과 핍박으로 지쳐있던 예루살렘 교회 전체에 커다란 영적 위로와 격려가 되었음이 분명합니다. 나아가 그의 위로는 예수님의 제자들과 십자가의 전파자들이 방방곡곡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데에 더욱 헌신토록 했을 것입니다. 바나바는 진실로 성령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참된 위로자가 되어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초대교회 성도들과 바나바를 통해 성령 하나님이 이루신 위대한 일을 함께 묵상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저 이전의 초대교회의 기록으로 치부할 것이 아닙니다. 오늘,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또 내주하셔서 역사하시는 성령 하나님이 우리의 가정과 삶을 통해 이루실 놀라운 일을 기대하게 하고 실천하게 하는 귀한 말씀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와 우리 교회와 가정이 누려야 할 은혜임을 묵상하기 바랍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두 가지 질문을 품고 삶의 자리로 나아가기 바랍니다. 첫째, 우리는 공동체와 가정이, 또 부부와 자녀들이 하나가 되기를 위하여 성령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하고 있습니까?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내 고집이나 방법으로 설득하려 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기 바랍니다. 내가 먼저 겸손히 무릎 꿇고, "성령님, 우리의 마음을 한마음과 한뜻으로 묶어 주시옵소서" 기도할 때, 모든 관계와 가정, 속한 공동체가 성령님의 일하심으로 하나가 될 줄 믿습니다.

둘째,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그 놀라운 은혜를 삶의 자리에서 흘려보내는 실천을 하고 있습니까? 성도 여러분, 은혜는 관념이나 감정이 아닙니다. 참된 은혜는 바로 믿는 성도인 우리의 손과 발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로 흘러가야 합니다. 오늘 내가 소유한 시간과 물질을 작은 실천을 통해 은혜로 흘려보내고, 헌신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고민하고 또 실천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또한 교회 안의 연약한 지체에게, 거저 받은 '큰 은혜'를 삶의 실천으로 증명할 수 있기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언합니다.

우리가 바나바처럼 또한 초대교회의 성도들과 같이 청지기의 마음으로 소유를 나누고 이웃을 위로할 때, 세상은 우리를 통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실 것입니다. 오늘 하루 그리고 이번 한 주간, 성령 하나님이 이루시는 하나 됨의 은혜와 삶의 실천이 흘러가는 인생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모든 성도가 성령 하나님이 이루시는 하나 됨의 은혜를 누리고 헌신을 실천하는 삶을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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