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주만나
2026년 10월 10일
2026-10-04 06:50:47
꿈미
조회수   75

설득이 아닌 선포입니다

 

일시 : 2026년 10월 10일
본문 : 사도행전 4:13-22

 

 

우리 속담 중에 “콩으로 메주를 쑨대도 곧이듣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틀림없는 사실을 눈앞에 보여주고 말해도 도무지 믿지 않는 태도를 꼬집는 표현입니다. 아무리 명백한 진실이라 할지라도, 마음속에 이미 자리 잡은 편견과 불신, 그리고 완고한 자존심이 가득 차 있으면 그 사실을 결코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간의 왜곡된 고집을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 속에 등장하는 산헤드린 공회원들의 모습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애초부터 베드로와 요한의 입에서 나오는 진리의 음성을 들을 마음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당시 갈릴리 어부 출신이었던 사도들을 ‘학문 없는 범인’, 즉 정규 랍비 교육을 받지 못한 보잘것없고 무지한 자들이라며 철저하게 얕잡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미 ‘기득권과 완악함’이라는 두꺼운 색안경을 끼고 사도들을 바라보았기에, 그들은 눈앞에서 생생하게 일어난 하나님의 권능과 기적을 보고도 진리를 끝내 거부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 완고한 세상을 마주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 함께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1, 회개는 방향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산헤드린 공회원들은 베드로가 선포한 부활의 복음을 분명히 들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 복음의 권능을 눈앞에서 부인할 수 없게 만드는 확실한 증거까지 목격했습니다. 본문 14절입니다.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14절) 성전 미문 앞에 주저앉아 평생 구걸하던, 나면서부터 한 번도 걸어보지 못했던 마흔 살 된 그 사람이 두 다리로 당당히 일어나 사도들 곁에 서 있었습니다.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명백한 하나님의 기적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쯤 되었을 때 그들은 무릎을 꿇고 회개해야 마땅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기가 막힌 결론을 내립니다. 본문 16-17절입니다.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까 그들로 말미암아 유명한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16-17절) 그들 스스로도 “부인할 수 없다”라고 인정했습니다. 기적도 보았고, 백성들의 환호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결론은 진리 앞에서의 굴복이 아니라, 사도들을 향해 ‘더 이상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는 엄포와 위협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왜 이들은 이토록 어리석은 결정을 내렸을까요?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살인자라는 사실도 인정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누려온 종교적 기득권과 권력, 그리고 사람들의 존경을 한순간에 잃어버릴까 두려웠던 것입니다. 결국 자신의 자존심과 기득권을 내려놓기 싫어서 눈앞에 살아 계신 하나님을 밀어내 버렸습니다.

마치 이런 것과 같습니다. 차를 타고 도로를 달려갑니다. 커다란 표지판에 '위험! 길 없음! 돌아가시오!'라는 경고 메시지가 가득히 적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보고도 고집을 부리며 계속해서 달려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결국 큰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회개란 단순히 감정적으로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는 ‘돌이키는 것’입니다. 내가 고집스럽게 달려가던 자기주장의 길에서 멈추어 서서,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핸들을 꺾어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것입니다. 혹시 오늘 우리 안에도 이 공회원들과 같은 완악함이 도사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 생각, 내 상처, 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명백한 말씀과 성령의 경고를 모른 척 외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 고집의 끝은 영적인 메마름과 사망일 뿐입니다. 오늘 이 아침, 나의 생각과 고집을 내려놓고 온전히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복된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2.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로 결단하십시오.

 

산헤드린 공회원들은 사도들을 다시 불러 엄히 경고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는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만약 이 경고를 어기면 더 가혹한 형벌과 투옥, 심지어 사형에 처해질 수도 있는 서슬 퍼런 위협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살벌한 협박 앞에서 베드로와 요한은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본문 19-20절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19-20절) 사도들은 세상의 권력자들을 향해 거룩한 질문을 던집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을 듣는 것이 옳은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옳은지 너희 스스로 판단해 보라!” 세상의 어떤 위협 앞에서도 두려워 떨지 않았던 사도들의 행동 기준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사람의 위협보다 하나님의 임재를 더 두려워했고, 육신의 안락함보다 영원한 진리를 지키는 것을 더 가치 있게 여겼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매일의 삶 속에서 사도들이 겪었던 것과 똑같은 선택의 기로에 직면합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신앙도 좋지만 네 생계와 편안함이 우선이다”, “세상에서 인정받으려면 적당히 입을 다물고 타협해야 한다.” 세상은 복음을 들고 서 있는 우리를 ‘학문 없는 범인’처럼 무시하고, 비웃으며, 우리의 신앙을 무가치한 것으로 치부하려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데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놀라운 영적 원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은 ‘세상 사람들을 논리로 설득하여 믿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열고 믿음을 주는 영역은 오직 성령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은 오직 내가 만나고, 보고, 들은 구원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담대히 선포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4절은 말씀합니다.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롬 10:14) 듣지 못하면 믿을 수 없습니다. 전파하는 사람이 없으면 들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역할은 설득이 아니라 선포입니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 두고, 우리는 ‘우리가 보고 들은 구원의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자리에서 신실하게 증언하기만 하면 됩니다. 이 작은 일에 순종하기로 결단하십시오. 우리가 결단할 때 하나님이 행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이 이루실 그 놀라운 일을 경험하길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베드로와 요한은 세상의 위협 앞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났고, 그분의 살아 계심을 삶으로 경험했기에 어떤 두려움도 그들의 입을 막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 하루,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먼저 엎드리기를 바랍니다. 말씀이 내 삶의 허물을 비추실 때 고집부리지 말고 겸손히 돌이키며, 나를 위협하고 위축시키는 세상의 시선 앞에서도 부끄러움 없이 오직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삶으로 선포하십시오. 저와 여러분이 사람의 인정에 목매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복음의 능력을 증언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첨부 파일
공지 설교문은 참고용 자료입니다. 꿈미 2019-09-07 1227
4016 2026년 10월 21일 꿈미 2026-10-16 5
4015 2026년 10월 20일 꿈미 2026-10-16 6
4014 2026년 10월 19일 꿈미 2026-10-16 6
4013 2026년 10월 18일 꿈미 2026-10-12 30
4012 2026년 10월 17일 꿈미 2026-10-12 34
4011 2026년 10월 16일 꿈미 2026-10-12 54
4010 2026년 10월 15일 꿈미 2026-10-11 73
4009 2026년 10월 14일 꿈미 2026-10-09 77
4008 2026년 10월 13일 꿈미 2026-10-09 68
4007 2026년 10월 12일 꿈미 2026-10-08 73
4006 2026년 10월 11일 꿈미 2026-10-04 66
4005 2026년 10월 10일 꿈미 2026-10-04 75
4004 2026년 10월 9일 꿈미 2026-10-04 75
4003 2026년 10월 8일 꿈미 2026-10-04 76
4002 2026년 10월 7일 꿈미 2026-10-01 93
1 2 3 4 5 6 7 8 9 10 ... 2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