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의 사람들
일시 : 2026년 8월 29일
본문 : 사무엘하 23:8-39
영화나 연극을 보러 가면, 무대 위에는 화려한 조명이 비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주연 배우의 명연기에 관객들은 숨을 죽이며 보다가 끝나면 박수갈채를 보냅니다. 그런데 그 완벽하고 영광스러운 무대를 만들기 위해, 관객의 눈에 보이지 않는 무대 뒤편이나 깜깜한 조명실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일을 하며 땀을 뻘뻘 흘립니다. 누군가는 배우들이 돋보이도록 무거운 조명기구를 붙들고 있고, 누군가는 소품을 제때 챙겨주기 위해 발을 동동거리며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상식 때 연예인들은 항상 “스탭들이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어 놓았다.”라고 하며 우리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말하기도 합니다. 만약 그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땀방울이 없었다면 화려한 무대와 작품은 결코 존재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 사무엘하 23장의 긴 본문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찬란했던 다윗 왕국이라는 무대가 어떻게 세워졌는지를 보여 줍니다. 마치 영화가 끝나고 난 뒤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처럼, 영광스러운 이름들이, 그리고 일부지만 그들이 한 일이 나열됩니다. 먼저 8절 상반절을 읽겠습니다. “다윗의 용사들의 이름은 이러하니라”(8a절) 우리는 주로 다윗이라는 위대한 주연 배우만 기억하는데, 사실 다윗 곁에는 피와 땀과 눈물로 그 무대를 든든히 지켜냈던 수많은 조연들, 무명의 동역자들이 함께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무려 37명에 달하는 용사들의 헌신이 빼곡하게 기록돼 있습니다. 성경이 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우리에게 들려주는 참된 동역자의 모습을 함께 묵상해 보겠습니다.
1. 참된 동역자는 충성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전반부에는 다윗 군대의 전설적인 용사들 이름이 차례로 등장합니다. 8절에 나오는 ‘요셉밧세벳’은 단번에 800명을 쳐 죽인 용사였고, 18절에 나오는 ‘아비새’는 창을 들어 300명을 물리친 인물입니다. 본문 9절에는 엘르아살이 나오는데 10절은 그가 무엇을 했는지 말해줍니다. “그가 나가서 손이 피곤하여 그의 손이 칼에 붙기까지 블레셋 사람을 치니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크게 이기게 하셨으므로”(10a절) 엘르아살은 적진 한가운데서 모두가 도망칠 때 홀로 남아 싸웠습니다. 얼마나 칼을 꽉 쥐고 오래 싸웠는지, 손에 마비가 와서 칼과 손이 하나로 붙어버릴 정도였다고 설명합니다. 이어서 11-12절의 ‘삼마’를 보면, 적들이 쳐들어온 곳이 하찮은 ‘팥밭’이라 이스라엘 군대는 다 버리고 도망갔지만, 삼마는 홀로 그 밭 한가운데 우뚝 서서 적을 막아냈다고 합니다. 또 20절에 나오는 ‘브나야’는 어떠합니까? “또 눈이 올 때에 구덩이에 내려가서 사자 한 마리를 쳐죽였으며”(20b절) 눈이 오는 날, 미끄럽고 캄캄한 구덩이 밑바닥으로 내려가는 것은 춥고 외롭고 생명을 거는 비상식적인 행동이라고 볼 수밖에 없지만, 왕과 백성의 안전을 위해 브나야는 기꺼이 그 춥고 외로운 밑바닥으로 내려가 사자와 싸웁니다. 성경은 이들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모두 다윗 옆에서 충성되이 섬겼던 사람들입니다.
매일 반복되는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가정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 가족들을 위해 밥을 짓고 청소하는 어머니가 있고, 직장에는 남들이 다 피하고 싶어 하는 번거롭고 빛도 안 나는 잡무를 묵묵히 해내는 직장인들이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들 다 시원한 본당에서 예배드리고 교제할 때,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봉사하거나,추운 겨울날 매연을 마시고 뜨거운 여름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주차 안내를 하는 지체가 있습니다. 알아주는 사람도 별로 없는 팥밭이고, 춥고 외로운 함정 밑바닥 같은 자리들입니다. 어쩌면 ‘나 하나쯤 안 한다고 무슨 큰일이 나겠어?’라며 도망가기 쉬운 자리들입니다. 하지만 이 무명의 사람들은 남들이 다 하찮게 여기고 버리고 간 그 자리가,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사명의 자리임을 알았기에 끝까지 물러서지 않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묵묵히 섬기고 있는 그 자리가 남들은 다 도망가 버린 하찮은 팥밭처럼, 혹은 눈 오는 날의 함정 밑바닥처럼 춥고 외롭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표도 나지 않는 교회의 작은 봉사, 지치기만 하는 육아와 가사의 현장에 있기도 합니다. ‘내가 이러려고 고생하나.’ 싶어 다 내려놓고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십니다. “주님, 비록 작아 보이는 일일지라도 제가 이 팥밭을 지키겠습니다.” 하고 기도로 주님에 대한 충성을 실천하는 그 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은 가정을 살리시고 교회를 살리시는 큰 구원을 이루실 줄 믿습니다.
2. 참된 동역자의 이름은 영원히 기억됩니다
오늘 본문에는 가슴 뭉클한 장면이 나옵니다. 15-16절을 보면 “15 다윗이 소원하여 이르되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누가 내게 마시게 할까 하매 16 세 용사가 블레셋 사람의 진영을 돌파하고 지나가서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 물을 길어 가지고 다윗에게로 왔으나”(15-16a절) 다윗이 더위와 피로에 지쳐 고향의 우물물이 마시고 싶다고 무심코 혼잣말을 했습니다. 왕의 명령이 아니라 그저 지쳐서 내뱉은 넋두리였습니다. 그런데 무명의 세 용사가 그 지나가는 말을 듣고, 목숨을 걸고 시퍼런 적진을 뚫고 들어가 그 물을 길어옵니다. 다윗은 이것이 물이 아니라 부하들의 피, 생명임을 알고 눈물로 하나님께 부어 드립니다. 이들이 적진을 뚫은 것은 군인의 의무감이 아니라, 다윗을 향한 깊고 진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이 외에도 다윗을 섬겼던 많은 용사들의 명단이 39절까지 길게 쭉 이어집니다. 이들은 앞에 나온 사람들처럼 화려한 영웅담이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다윗 왕국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떠받친 기둥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이 찬란한 37명 명단의 대미를 장식하는 가장 마지막 이름이 누구인 줄 압니까? 39절을 읽겠습니다. “헷 사람 우리아라 이상 총수가 삼십칠 명이었더라”(39절) 참으로 가슴 먹먹한 이름이 나옵니다. 우리아는 다윗에게 억울하게 배신당하고 목숨을 잃은 충신이었습니다. 세상의 왕 다윗은 자신의 죄악을 덮기 위해 이 충신의 이름을 지워버리고 싶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끝까지 나라를 사랑했던 그의 묵묵히 일한 수고와 억울한 죽음을 결코 잊지 않으시고, 이 영광스러운 명단의 마지막에 ‘우리아’의 이름을 가장 선명하게 새겨 놓으셨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사랑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스쳐 지나가는 말로 어떤 물건이 가지고 싶다고 말했는데 그것을 기억하고 생일에 선물로 준다면 감동이 됩니다. 목이 아파 기침을 할 때 물을 떠다 주거나 목이 아프지 않도록 하는 사탕을 주면 그것으로 사랑을 느낍니다. 나도 좋아하는 음식이지만 상대방도 좋아하는 것을 알고 그릇을 밀어주는 것에서 따스함을 느낍니다. 이처럼 진짜 동역은 억지로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그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고 싶어서 자원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사람에게 섭섭하고, 잊힌 것 같아 마음이 아플 때도 있지만, 우리아의 이름을 기억하셨던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수고를 하늘의 생명책에 선명하게 기록하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탄식 소리를 듣길 원합니다. 십자가에서 피 흘려 세우신 이 교회를 향해,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해 주님이 애타게 목말라하실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내 체면이 조금 깎이고, 내가 조금 손해 보는 것이 아까워서 모른 척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람에게 인정받으려는 억지 헌신이 아니라, 자기 생명을 내어주시기까지 나를 사랑하신 주님을 나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목마름을 시원하게 해 드리는 성도가 되길 바랍니다. 사람들은 내 수고를 잊어버려도, 하나님은 기억하십니다. 우리아처럼 저 하늘의 생명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영광스럽게 빛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위대한 다윗 곁에는 손이 마비되도록 싸운 엘르아살, 하찮은 팥밭을 지킨 삼마, 눈 오는 날 함정으로 뛰어든 브나야가 있었습니다. 왕의 넋두리에 생명을 건 세 용사가 있었고, 배신 속에서도 죽기까지 충성했던 우리아와 서른 명의 무명 용사들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이 사회는 곳곳에서 자기가 맡은 일을 성실히 하는 사람들이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주님이 세우신 교회도 겉으로 화려한 능력을 가진 몇몇 사람이 아니라, 남몰래 자기 자리를 지키며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무명의 사람들, 무명의 용사들, 무명의 헌신자들을 통해 이어집니다. 사람의 칭찬이 없어도 내게 맡겨진 작은 팥밭을 기도로 지켜내는 모든 성도에게, 하늘 생명책에 이름이 깊이 새겨지는 하나님의 크신 상급이 넘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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