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불을 지키는 공동체
일시 : 2026년 8월 24일
본문 : 삼하 21:15-22
오늘 우리는 세월 앞에 나이 들고 연약해진 한 사람, 다윗을 바라봅니다. 그는 본래 민족의 영웅이었습니다.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이 이스라엘을 위협할 때, 그를 대적하기 위해 홀로 물매와 돌을 들고 나가 승리를 쟁취했던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역시 한낱 인간에 불과했습니다. 기력이 쇠하여 자신을 지킬 힘이 없어 자신을 죽이러 찾아온 사람을 막아낼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목숨이 위태로운 위기 상황 속에서 다윗의 죽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윗을 지키고 살리는 자들이 있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 후사 사람 십브개, 베들레헴 사람 엘하난, 다윗의 형 삼마의 아들 요나단, 그들은 모두 다윗을 위해 싸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윗을 지키는 자들은 하나같이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지지 말게 하옵소서” 다윗은 이스라엘의 등불이었습니다. 성소에서 등불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임재를 상징했습니다. 그래서 이 등불은 절대 꺼져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등불이 꺼진다는 것은 곧 생명의 소멸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게 봤을 때 다윗은 나라 전체의 존립 및 백성들의 생명 같은 존재였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하고 계신다는 신앙적 보증과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다윗의 가문과 그의 왕위를 견고하게 지킬 것이라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그의 생존이 곧 이스라엘의 생존이요, 국가가 살아남는 길이었던 것입니다. 이에 그들은 다윗을 반드시 지켜야 했고, 지켜냈습니다. 그 결과 블레셋의 거인들을 무찌르고 전쟁 가운데 승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무엇입니까!? ‘등불을 지키는 공동체가 거인을 이긴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신앙 공동체로서 우리가 지켜야 할 등불은 무엇일까요!?
1.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등불
첫째, 여호와 하나님이 주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등불을 지켜야 합니다. 본문 17절에서 다윗의 부하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냈던 이스라엘의 등불은 궁극적으로 다윗의 혈통을 통해 이 땅에 오실 메시아, 즉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다시 말해 다윗의 부하들은 자신의 왕인 다윗을 지켰지만, 그 일이 궁극적으론 여호와 하나님께서 언약을 통해 약속하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오실 길을 지키는 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지켜낸 등불은 오늘날 우리에게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수많은 역사를 통해 우리의 유일한 소망으로 주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요한복음 8장 12절을 보면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리라” 결국 우리 영혼 중심에는 예수님께서 살아계셔야 합니다. 그분을 따르는 믿음으로, 빛 가운데 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등불을 꺼뜨리기 위해, 그를 따르지 못하도록 달려드는 거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거인은 무엇일까요? 바로 ‘세상의 가치관’입니다. 본문 16절과 20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거인족의 아들 중에 무게가 삼백 세겔 되는 놋 창을 들고 새 칼을 찬 이스비브놉이 다윗을 죽이려 하므로“(16절), ”또 가드에서 전쟁할 때에 그 곳에 키가 큰 자 하나는 손가락과 발가락이 각기 여섯 개씩 모두 스물네 개가 있는데 그도 거인족의 소생이라”(20절)
오늘날 이 시대에 나타나는 현상들이 있습니다. 자녀 세대의 급격한 탈교회화, 디지털 미디어가 쏟아내는 교묘한 무신론, 자산 규모에 따라 인간의 가치를 환산해 버리는 기형적 물질주의 시스템, 왜 이런 현상들이 나타날까요!? 이것은 결국 인간 내면에 나타난 세속화의 욕망 때문입니다. 구별된 삶은 힘드니 편한 길로 가서 왕처럼 살고 싶어 하는 그릇된 마음인 것이죠.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세상의 가치관은 우리가 피곤할 때 틈탑니다. 세상을 열심히 살다가 영적으로 무너지고 힘이 들 그때, ‘왜 나만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예수님이 내 인생에 해 주신 게 뭔가? 왜 나만 이렇게 힘든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세상의 가치관은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살리는 유일한 생명줄이 아니라 걸림돌이 되고, 내 삶을 힘들게 만드는 존재로 전락시켜버리는 오류를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이 일이 지속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등불이 꺼지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렇게 강력한 거인에 맞서 등불을 지켜내야 합니다. 무엇으로 지키겠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세상의 공격과 미디어의 영향에 맥없이 흔들리는 원인은 사실 세상의 가치관이 너무 강력해서가 아닙니다. 도리어 말씀의 기준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기준이 사라지니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사기와 같이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 말씀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말씀 앞에 나아갈 때 성령님은 우리를 도우시고, 등불을 지키게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에 바라기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등불을 지키기 위해 말씀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늘 말씀 앞에 서서 신앙의 기준을 세우십시오! 그 길이 곧 우리를 살리고, 등불을 지키는 능력이 될 줄 믿습니다. 그렇게 승리하길 축복합니다.
2. 신앙의 유산이라는 등불
둘째, 신앙의 유산이라는 등불을 지켜야 합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승리는 다윗 혼자 이룬 것이 아닙니다. 먼저 아비새가 일어났고, 18절 이하를 보면 십브개와 엘하난과 요나단이 줄지어 일어났습니다. 그들이 일어난 결과가 무엇입니까? 거인을 능히 무찌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다윗이라는 등불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이 사실이 보여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늙은 왕의 신앙과 용맹이 다음 세대의 용사들에게 계승되었다는 것입니다. 젊은 날 다윗이 홀로 골리앗이라는 거인을 마주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저 두려움에 떨며 구경만 하던 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다윗과 함께 울고 웃으며, 다윗이 고난의 한복판에서 어떻게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는지, 그가 어떻게 기도로 장벽을 뛰어넘는지 지켜보았습니다. 그 결과 다윗의 신앙의 흔적들은 부하들에게 고스란히 이식되었던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본문 22절에서 성경은 승리를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 네 사람 가드의 거인족의 소생이 다윗의 손과 그의 부하들의 손에 다 넘어졌더라“(22절) 거인들은 분명 부하들의 손에 넘어졌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승리를 다윗이 이룬 승리와 동일시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승리를 왜 그렇게 여기시는 걸까요!? 비록 늙은 다윗은 칼을 들 힘이 없어 뒤로 물러나 있었지만, 그의 믿음의 유산을 이어받은 부하들의 손은 곧 다윗의 믿음의 손이 연장된 결과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하나님은 부하들이 이룬 승리를 다윗의 승리와 동일시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오늘날 우리 장년 세대, 부모 세대에게 원하시는 진정한 승리의 영광입니다. 장년이 되고 노년이 되면, 우리는 더 이상 예전처럼 교회를 섬기거나, 거친 세상의 전선에서 혈기 왕성하게 골리앗을 쓰러뜨릴 기력이 없을지 모릅니다. 때로는 "이제 내 시대는 저물어 가는데, 내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쓸쓸함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특별히 본문에 ‘삽’이라는 거인과 또 ‘라흐미’와 같은 거인들이 있죠! 삽이라는 이름은 ‘문턱’, ‘한계’를 뜻합니다. 관계와 환경의 한계, 우리가 겪는 부부간의 문제, 자녀들의 문제, 노후에 여전히 나를 압박하는 재정적, 육신적 한계라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라흐미는 골리앗의 아우입니다. 그는 이미 지난 과거를 다시 들추는 거인입니다. 과거의 죄악, 실패, 상처, 수치의 그림자가 나의 발목을 잡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때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나의 사명은 또 한 번 내 손으로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업적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할 일은 인생의 거인을 마주할 다음 세대가 당당히 맞서 싸워 이길 수 있도록 그들의 ‘승리를 위한 디딤돌’이자 신앙의 유산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삶 속에 찾아오는 거인들 앞에 타협하지 않고 믿음으로 세상을 이겨낼 때, 하나님은 그것을 누구의 승리로 보실까요? 바로 자녀들을 위해 날마다 눈물로 무릎을 꿇었던 우리의 ‘기도의 손’이 이룬 승리로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가정이, 우리 교회가 이 ‘신앙의 유산’이라는 등불을 꺼뜨리지 않고 다음 세대에게 잘 전달할 때, 우리는 한계를 뛰어넘어 영원히 승리하는 공동체가 될 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영광스러운 전수의 사명을 기쁨으로 감당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우리는 등불을 지키는 공동체입니다. 세상의 가치관에 맞서, 우리의 한계와 나의 발목을 잡는 과거의 그림자에 맞서 싸워 승리해야 할 공동체입니다. 무엇을 해야 합니까? 말씀과 기도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밝게 드러낼 수 있길 축복합니다! 다음 세대에게 그 빛 되신 주님을 전해주는 세대가 될 수 있길 축복합니다. 자녀 세대의 잘됨이 곧 기성세대의 승리입니다. 그렇게 여겨주실 주님과 함께 여러분이 늘 승리하는 삶을 살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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