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만나
2025년 10월 20일
2025-10-12 17:42:01
꿈미
조회수   15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

 

일시 : 20251020

본문 : 누가복음 6:1-11

 

  과거 청교도들은 주일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노동, 오락, 여행, 상업 활동 등을 금했습니다. 그래서 주일이 되면 상점들이 모두 문을 닫고, 장터가 사라지며 사람들은 오락과 유흥 대신 말씀과 기도에 집중했습니다. 이 전통은 오늘날에도 이어져, 어떤 성도는 주일에 돈을 쓰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집중하려고 합니다. 참 귀한 마음입니다.

 그런데 가끔 처음의 좋은 의도는 사라지고, 규율과 규칙만 남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을 도치 현상이라 부릅니다. 본질이 사라지고 형식만 남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주일에 연로한 성도님들을 태우기 위해 교회 승합차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토요일에 미리 기름을 채워두었는데, 그날따라 교회 행사로 분주해 미처 기름을 넣지 못한 겁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일에는 돈을 쓰면 안 되니 차를 세워두고 성도님들께 직접 오시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운전자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사비로 기름을 넣어야 할까요? 이미 이런 고민 자체가 본질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애초에 주일에 돈을 쓰지 않겠다는 결단은 예배에 집중하기 위함이었는데, 어느새 돈을 쓰지 않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 겁니다.

 오늘 본문 속 유대인들이 바로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고 명령하셨는데, 그들은 본질은 잊은 채 자신들이 만든 수많은 규칙에 얽매여 예수님과 제자들을 정죄했습니다. 심지어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죽일 음모까지 꾸몄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묻습니다. 혹시 우리 안에도 본질을 잃은 신앙은 없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잊은 채 형식에만 매여 있지는 않습니까? 본문을 통해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회복하고, 주인 되신 예수님 안에서 참된 자유를 누리길 축복합니다.

 

1. 안식일은 생명을 살리는 날입니다.

  안식일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밀밭 사이를 지나가실 때, 배가 고팠던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벼 먹었습니다. 1절 말씀입니다.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으니(1).”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굶주린 자가 밭에서 곡식을 먹는 것이 허용되어 있었기에 문제 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제자들의 행위를 보고 정죄합니다. 2절 말씀입니다.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냐(2).” 그들이 문제를 제기한 것은 남의 밭에 있는 밀을 먹은 것이 아닙니다. 안식일에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빈 것을 추수 행위로 규정한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저 배가 고파 몇 알을 비벼 먹었을 뿐인데, 바리새인들은 이를 율법 위반으로 몰아간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당시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세부 규정들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의 구전 율법을 모아놓은 미쉬나에는 안식일에 2천 규빗(1km) 이상 걸으면 안 된다”, “집 안의 물건을 밖으로 옮기면 안 된다”, “환자를 치료하면 안 된다와 같은 규정들이 빼곡히 기록돼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주신 이유는 규칙을 지키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다윗의 예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3-4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 및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다만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3-4).” 당시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 왕을 피해 도망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놉 땅에 있는 아히멜렉 제사장에게 도착했지만, 너무 굶주리고 힘들어 죽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아히멜렉 제사장은 율법을 따라 제사장들만 먹을 수 있는 진설병을 내어주었고, 진설병을 먹은 다윗과 일행들은 생명을 보존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안식일은 생명을 살리는 날입니다. 그러나 그 의미가 사라진 채 형식만 남게 되면 결국 사람을 얽매고 정죄하게 됩니다. 혹시 우리도 말씀과 신앙을 통해 누군가를 정죄하고 판단하는 데만 몰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안식일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기억하며, 가난하고 굶주린 자들과 함께하는 날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형식이 아니라 생명을 붙들길 축복합니다.

 

2. 안식일은 선을 행하는 날입니다.

  본문 6절 이하에는 또 다른 안식일에 일어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오른손이 마른 사람을 만나셨습니다. ‘손이 말랐다는 표현은 근육과 신경이 위축되어 손을 쓸 수 없는 상태를 뜻합니다. 단순한 질환이 아니라 평생 회복이 불가능한 만성 장애였습니다. 더불어 당시 유대 사회에서 장애는 하나님의 징계나 죄의 결과로 오해되기도 했습니다. , 이 사람은 육체적 고통뿐 아니라 사회적·정서적 낙인 속에 살아야 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그의 고통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고발할 빌미를 찾기 위해 그를 이용합니다. 7절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고발할 증거를 찾으려 하여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가 엿보니(7).” 그들은 사람의 고통보다 율법 조항을 지키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9절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며(9).”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중 어느 것이 옳으냐고 물으십니다. 그러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이 쉬운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분명 답을 알지만 대답하기를 싫어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은 예수님을 향한 증오와 분노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손 마른 사람을 애써 외면하며 무시했으나, 예수님은 그 사람의 손을 고치시고, 그의 삶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우리도 안식일을 형식적으로 지키면서 정작 이웃의 고통에는 무관심하지 않습니까? 몸은 예배당에 나와 있으면서도 마음은 미움과 시기와 질투로 가득 차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런 죄를 짓도록 안식일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안식일은 선을 행하고 생명을 살리는 날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우리의 삶 속에서 선을 행함으로 주님을 드러내길 축복합니다.

 

3. 안식일은 예수님과 동행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5절입니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5).” 안식일의 주인은 규례나 율법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십니다. 안식일이라는 날 자체가 거룩한 것이 아니라,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과 함께할 때 거룩해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안식일의 핵심은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참된 쉼을 누리고, 주님과 함께 거하며, 그분의 임재 가운데 참 자유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128절은 우리에게 안식일의 본질을 알려줍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11:28).” 안식일의 규례와 규칙을 지키는 것이 본질이 아닙니다. 안식일을 통해 온 천지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예배하며,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과 함께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참된 안식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안식일을 지키는 것처럼 보여도 주님과 동행하지 않는다면 껍데기뿐입니다. 그러나 주님과 함께하면 우리의 예배는 기쁨이 되고, 우리의 쉼은 참된 자유가 됩니다. 안식일은 규율의 날이 아니라 예수님과 동행하는 날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예수님과 동행하는 즐거움으로 가득하길 축복합니다. 안식일에 몇 걸음을 걸었느냐가 아니라, 안식일에 주님과 함께 걷고 있는지를 고민하며, 저와 여러분이 더 깊이 주님과 동행하길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은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 안식일은 형식으로 사람을 정죄하는 날이 아닙니다. 안식일은 생명을 살리는 날입니다. 안식일은 무관심 속에 머무는 날이 아니라 선을 행하는 날입니다. 무엇보다 안식일은 주인이신 예수님과 동행하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일마다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을 하지 않았는가가 아니라, ‘주님과 함께하고 있는가입니다. 주님과 함께할 때 우리의 예배는 형식이 아닌 기쁨이 되고, 우리의 쉼은 단순한 휴식이 아닌 참된 자유가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매주 우리에게 허락된 주일이 이 기쁨과 은혜를 누리는 날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도 저와 여러분이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의 임재 안에서 참된 쉼을 누리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조회수 첨부 파일
공지 설교문은 참고용 자료입니다. 꿈미 2019-09-07 965
3652 2025년 10월 22일 꿈미 2025-10-12 17
3651 2025년 10월 21일 꿈미 2025-10-12 15
3650 2025년 10월 20일 꿈미 2025-10-12 15
3649 2025년 10월 19일 꿈미 2025-10-12 17
3648 2025년 10월 18일 꿈미 2025-10-12 14
3647 2025년 10월 17일 꿈미 2025-10-12 18
3646 2025년 10월 16일 꿈미 2025-10-12 24
3645 2025년 10월 15일 꿈미 2025-10-10 65
3644 2025년 10월 14일 꿈미 2025-10-10 54
3643 2025년 10월 13일 꿈미 2025-10-10 52
3642 2025년 10월 12일 꿈미 2025-10-05 48
3641 2025년 10월 11일 꿈미 2025-10-05 55
3640 2025년 10월 10일 꿈미 2025-10-05 69
3639 2025년 10월 9일 꿈미 2025-10-05 53
3638 2025년 10월 8일 꿈미 2025-10-02 60
1 2 3 4 5 6 7 8 9 10 ... 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