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만나
2025년 10월 8일
2025-10-02 12:52:32
꿈미
조회수   61

가고 보고 순종하라

 

일시 : 2025108

본문 : 누가복음 2:15-24

 

  우리는 매일같이 수많은 소식을 접하며 살아갑니다. 스마트폰 화면을 켜는 순간 세상은 이미 수십 가지 알림으로 우리를 부르고, 뉴스와 광고, 사람들의 후기와 별점이 눈앞을 가득 채웁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모든 정보를 아는 것이 우리의 삶을 실제로 바꾸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은 "내가 직접 가봤다", "내가 직접 경험했다"라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더 큰 확신을 얻고 움직입니다. 우리는 정보를 믿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경험과 증언을 믿는 존재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목자들의 이야기도 이와 비슷합니다. 천사들이 전한 소식은 너무나 놀라운 것이었지만, 그들은 그 소리를 그냥 흘려듣지 않았습니다. "베들레헴으로 가서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라고 곧바로 결단합니다. 듣는 데서 멈추지 않고, 직접 보고 확인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본 것은 단순한 아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의 시작, 곧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도 이와 같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복음을 '들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것은 '듣고 난 후에 가서 보고, 결국 순종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정보로 아는 복음은 우리를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경험하고 순종하며 살아낸 복음은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꿉니다. 목자들의 결단은 우리에게 신앙의 본질을 다시 묻습니다. "너는 지금 말씀을 듣고만 있는가? 아니면 실제로 가서 보고, 순종하며 살고 있는가?" 오늘 본문은 바로 그 자리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1. 가서 보고 전하라

  천사들의 찬양이 하늘로 사라진 뒤, 목자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15b). 이 짧은 한마디 속에는 목자들의 신앙적 결단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듣는 데서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가서 보자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보자'라는 말은 단순한 관찰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실제로 이루어진 것을 확인하고자 하는 믿음의 행동을 뜻합니다.

 당시 목자들은 사회적으로 가장 천대받는 계층이었습니다. 그들의 증언은 법정에서도 효력이 없을 정도로 신뢰받지 못했습니다. 그런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탄생을 가장 먼저 듣고 가장 먼저 확인하러 나섰다는 것은 놀라운 역설입니다. 하나님은 권력자도, 종교 지도자도, 부유한 자도 아닌, 사회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목자들을 첫 증인으로 세우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의 복음이 가진 본질입니다. 인간의 자격과 조건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과 은혜로 부르심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목자들은 즉시 움직였습니다. 그들은 늦추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신앙의 본질을 다시 발견합니다. 말씀을 듣고도 행동하지 않는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말하면서도, 현실의 상황과 계산 때문에 발걸음을 멈추곤 합니다. 그러나 목자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환경을 따지지 않았습니다. 오직 말씀을 들은 그 자리에서 즉시 순종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은 이해한 만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말씀하신 분의 신실하심을 의지하여 발걸음을 옮기는 것입니다.

 목자들이 도착하여 본 것은 단순한 아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았습니다(16). 인간적으로 보면 초라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보면, 그것은 온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구속사의 시작이었습니다. 목자들은 천사가 말한 그대로 이루어진 것을 확인했고, 그 경험은 곧 그들이 입술을 열어 증언하게 했습니다. "그들이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니"(17). 목자들의 증언은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이 직접 보고 경험한 것을 '알렸다'는 표현은, 이는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체험적 확신에서 나온 증언'을 뜻합니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복음은 정보로 전해질 수 없습니다. 복음은 반드시 '체험된 사실'로 증언되어야 합니다. 내가 경험하지 않은 복음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목자들은 낮은 자리에 있었지만, 자신들이 본 것을 증언할 때 하나님은 그들의 입술을 복음의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오늘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은 내가 단순히 알고 있는 개념이 아니라, 내 삶 속에서 실제로 경험한 은혜를 나누는 것입니다. 결국 본문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복음을 단순히 들은 자입니까, 아니면 보고 경험한 자입니까?" 목자들의 순종은 우리를 부릅니다. 가서 보고, 그리고 순종하며 증언하는 자리에 서라고.

 

2. 순종하며 낮아지라

  본문 후반부는 목자들의 증언 이후, 예수님께서 태어나 8일째 되던 날 할례를 받으시고, 40일이 되었을 때 부모인 마리아와 요셉이 성전으로 올라가 하나님께 드리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언뜻 보면 단순한 의식 절차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 구절 안에는 깊은 복음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태어나자마자 율법 아래 놓이셨습니다. 누가는 "할례할 팔 일이 됨에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잉태하기 전에 천사가 일컬은 바"라고 기록합니다(21).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인간으로서 율법의 요구를 처음부터 철저히 받으셨습니다. 이는 갈라디아서 44절의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려 함이라"(4:4-5a). 예수님은 단지 인간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대표로서 율법을 완전하게 이루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또한 요셉과 마리아가 성전으로 올라가 정결 예식을 행할 때, 그들이 드린 제사는 산비둘기 두 마리였습니다(24). 이는 가난한 자들이 드릴 수 있는 제물이었습니다(12:8).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 화려한 궁궐이 아니라 마구간에서 나셨고, 부유한 집안이 아니라 가장 가난한 이들의 자리로 내려오셨습니다. 예수님의 겸손과 낮아지심은 바로 우리를 높이시려는 하나님의 구속 계획의 일부였습니다. 십자가에 달리기까지 자기를 낮추신 예수님은, 처음부터 우리와 같은 처지, 아니 우리보다 더 낮은 자리에 서셨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진리를 발견합니다. 복음은 단순한 좋은 소식이 아니라, 실제로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모든 요구를 충족시키셨고, 우리 대신 그 무거운 멍에를 지셨습니다. 우리가 지켜야 할 율법의 의무와 형벌을 그분이 대신 지심으로, 우리는 자유와 은혜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팀 켈러는 복음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복음은 조언이 아니라 소식이다.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를 선포하는 것이다." 목자들이 이루어진 그 일을 보았듯, 우리 또한 예수님 안에서 이미 이루어진 구원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삶은 단순히 더 잘해야 한다는 도덕적 결심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구원의 은혜에 대한 순종의 응답입니다. 예수님의 낮아지심이 우리를 높이셨습니다. 이는 세상이 말하는 높아짐이 아닙니다. 우리도 주님을 따르며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높여야 합니다. 오늘날의 신앙 위기는 '듣고도 움직이지 않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나 목자들은 움직였고, 요셉과 마리아는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철저히 율법 아래 자신을 두심으로 우리를 해방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목자들의 이야기는 우리 신앙의 여정을 압축해서 보여줍니다. 그들은 천사의 소식을 단순히 듣는 데 머물지 않았습니다. 즉시 "가서 보자"라고 결단했고, 실제로 가서 보고, 본 것을 증언하며, 삶으로 순종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 역시 율법의 요구 앞에 성실히 순종했고, 예수님은 율법 아래 들어오셔서 우리 대신 모든 것을 이루셨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가 아닙니다. 복음은 지식의 차원에서 머물지 않고, 믿음으로 우리의 발걸음과 삶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목자들의 순종은 그들을 복음의 첫 증인으로 세웠습니다. 예수님의 낮아지심은 우리를 높이는 구원의 길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 남은 길은 분명합니다. 말씀을 듣고만 있지 말고, 실제로 가서 보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여전히 많은 성도들이 알고는 있지만 아직 움직이지 못한 자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머뭇거리는 자리에서 불러내십니다. 믿음은 완벽한 이해가 아니라, 작은 발걸음을 내딛는 순종에서 시작됩니다. 오늘 우리가 일상 속에서 작은 한 걸음을 내디딜 때, 하나님은 그 순종을 통해 복음을 드러내십니다. 그 결단과 순종 위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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