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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16일
2025-10-12 06:53:39
꿈미
조회수   25

말씀의 권세와 능력

 

일시 : 20251016
본문 : 누가복음 4:31-4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서 행하신 사역을 함께 묵상하려 합니다. 본문인 누가복음 4장에는 세 가지 장면이 등장합니다. 첫 번째 장면은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말씀을 선포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는 장면입니다. 두 번째는 시몬 베드로의 장모를 친히 치유하시는 장면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마을 전체를 향한 예수님의 치유와 복음 전파의 사역입니다. 그런데 이 세 장면은 하나로 통하며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보이신 말씀의 권세와 능력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가끔 이런 생각에 빠져 고민이 될 때가 있습니다. ‘매주 주일 예배를 통해 말씀의 은혜를 공급받는데 나의 삶은 왜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하는 생각입니다. 신앙의 결단이 있었음에도 이내 현실로 돌아오면 다시 무너지는 나의 모습을 통해 괴로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이와 같은 모습으로 고민합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살아있는 말씀의 권위 앞에 순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적인, 순간적인 동의만 있을 때 우리의 삶은 변화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바로 그 말씀의 권위에 어떠한 힘이 있는지 깨닫고 함께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결단을 하길 원합니다. 그 말씀을 믿고 따를 때, 변화되는 우리의 삶을 기대하며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가운데 예수님께서는 갈릴리의 가버나움으로 내려가십니다. 그리고 안식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회당에서 가르치기를 주저하지 않으십니다. 그때에 많은 사람들은 놀라며 말했습니다. 32절입니다. “그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위가 있음이러라여기서 권위를 표현하는 헬라어는 단순히 어떠한 권력에서 나오는 힘을 뜻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바로 하늘에서부터 오는 정당한 통치권으로 확장된 의미를 갖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단순한 교훈이나 철학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보기에도 하나님의 주권이 실제로 역사하는 말씀이었음을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당대의 전승이나 꽤나 권위 있다고 여겨지는 율법 학자의 가르침, 혹은 랍비의 훈계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살아 있는 말씀을 선포하심으로 권위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그때에 귀신이 떠나가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오늘 본문 34절에서 한 회당의 귀신 들린 자는 소리칩니다.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악한 영은 예수님의 정체와 그 권위를 단번에 알아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자임을 알고 두려움 속에 떠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예수님은 권위 있는 말씀으로 명령하십니다.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35). 그 즉시 귀신은 떠나가고, 그 사람은 아무 상함도 입지 않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말씀은 악한 영조차도 그 위엄을 알고 두려워 떠나는 능력의 말씀이자 권위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권위는 지금도 우리 가운데 역사하십니다. 우리의 내면에 자리한 두려움이 있습니까? 익숙하여 떨쳐내지 못하는 온갖 중독과 죄책감 또한 정죄가 있지는 않습니까? 그 모든 어둠은 말씀의 권위 앞에서 떠나가는 줄 믿기 바랍니다. 그 말씀의 권세와 능력 앞에 순복함으로 또 전적인 신뢰로 서기 바랍니다. 생명을 살리고, 영을 깨우며, 귀신을 쫓는 말씀의 권세를 믿어 의심치 말길 바랍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나와 시몬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그곳에는 중한 열병으로 누워 있는 시몬의 장모가 있었습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시몬이 아닌 여타의 사람들이 그의 장모를 고쳐주기를 간청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즉시 가까이에 서시고 열병을 꾸짖으십니다(39). 이후 즉시 병이 떠나가고 장모는 일어나 수종을 들게 됩니다. 여러분, 여기서 꾸짖다라는 단어는 이전에 예수님께서 귀신을 내쫓을 때 사용하신 표현과 같은 것입니다. 풀어 이해해 본다면 말씀의 권세 앞에 복종하여 떠나간 악한 영과 같이 질병마저 예수님의 말씀의 권세 앞에 복종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보다 더 큰 권세는 없다는 것을 또 한 번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시몬의 장모는 곧바로 일어나 예수님과 제자들을 섬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의 권세에는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의 끝에는 은혜가 있습니다. 악한 영이 떠나고, 질병을 고침 받은 자들은 단순히 회복의 자리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받은 그 은혜로 섬기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말씀의 권위 앞에 믿는 우리는 회복될 수 있음을 믿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회복의 자리는 또 다른 섬김의 자리가 됨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마지막 세 번째로 오늘 본문 40~41절은 마을 전체를 회복시키시는 예수님의 권세를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해 질 무렵, 마을의 많은 병자와 귀신 들린 자들이 몰려왔음에도 쉬지 않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치유의 사역을 행하신 것입니다(40). 놀라운 것은 귀신들조차도 예수님을 향해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라고 외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꾸짖으시며 이를 말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그 이유는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참된 말씀의 권세와 하나님의 능력이 단편적으로 비치기를 원치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궁극적으로 십자가를 짊어지시고 그 위에서 죽으시기 위함이지 기적의 증거만을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기적은 복음의 증거이지 복음 그 자체가 아님을 예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날이 밝자 무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속히 떠나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4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말씀의 권세 그 자체이신 예수님조차도 하나님의 권세 앞에 순종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 말씀 앞에서 매일 순종하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성도인 우리가 결단만 한다면 살아있는 말씀의 양식을 매일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권위 앞에 순종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은혜를 누리지 못하고 살 때가 너무도 많습니다. 말씀 앞에 결단하기 바랍니다. 악한 영조차도 인정하여 떠나가는 그 말씀의 권세와 능력 앞에서 우리의 삶은 변화될 것입니다. 말씀의 권세에 어떠한 힘이 있는지 매일 깨닫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결단과 기도로 변화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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