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만나
2025년 6월 10일
2025-06-07 09:26:01
꿈미
조회수   16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일시 : 2025610

본문 : 출애굽기 10:1-11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이런 질문들을 할 때가 있습니다. “왜 하나님은 악을 즉시 멸하지 않으시는가?” “왜 악인의 교만을 오래 참으시는가?” 눈앞의 불의가 더 기세등등해질 때 우리는 혼란과 답답함을 느낍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묻습니다. “왜 하나님은 바로 같은 사람을 그냥 두실까?” 하지만 성경은 이런 감정적 판단을 넘어, 하나님의 주권과 뜻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합니다. 하나님은 악인을 단순히 벌하시는 분이 아니라, 그들의 완악함까지도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바로의 고집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은 이방 가운데 드러났고, 백성은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영광은 다음 세대에까지 이어지며, 하나님은 그 과정을 통해 우리를 참된 예배자로 빚어가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출애굽기 10111절은 단순한 재앙의 예고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신 이유를 자세하게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만일 바로가 처음부터 순종했다면 출애굽의 역사는 전혀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완강함은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더 크고 분명하게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특별히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 그리고 예배로 부르심에 대해서 몇 가지 중요한 메시지를 나누고자 합니다.

 

1. 하나님께서 바로와 그의 신하들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표징을 그들 가운데 보이기 위함이었습니다.

  본문 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그의 마음과 그의 신하들의 마음을 완강하게 함은 나의 표징을 그들 중에 보이기 위함이라.” 하나님은 단순히 바로를 징벌하신 것이 아니라, 그의 완악함마저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고대 애굽은 태양, 나일강, 풍요와 어둠 등 수많은 신을 섬기던 다신교 사회였고, 바로는 살아 있는 신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 세상 한복판에서 하나님은 열 가지 재앙을 통해 여호와만이 참 하나님이심을 선포하셨습니다. 이는 단순한 심판이 아니라 구속사적 표징이며,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하는 영적 전쟁이었습니다. 출애굽기 929절에서 모세는 바로 왕을 향해 세상이 여호와께 속한 줄을 왕이 알리이다라고 선언합니다. 3절에서도 하나님은 바로에게 네가 어느 때까지 내 앞에 겸비하지 아니하겠느냐?”고 묻습니다. 바로가 겉으론 회개하는 듯 보였지만, 여전히 교만한 마음과 그 땅의 회복 가능성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가 우박을 피해 남은, 밀과 보리에 희망을 두었지만, 하나님은 그 남은 것까지 치시며 인간의 마지막 의지처마저 무너뜨리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언제까지 내 앞에 겸비하지 않겠느냐?” 혹시 우리 마음에도 끝까지 붙들고 있는 남은 것은 없습니까? 자존심, 통제권, 재물, 체면. 하나님은 때로 그것까지 무너뜨리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를 해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유일한 소망이심을 알게 하려는 은혜의 손길입니다. 참된 신앙은 더는 붙들 것이 없을 때, 하나님 앞에 겸손히 엎드리는 데서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 앞에 서 있는 오늘, 바로처럼 완악함을 고집하지 말고, 1. 겸손히 무릎 꿇는 은혜가 우리 안에 부어지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표징은 심판이 아니라, 우리를 돌이켜 하나님을 알게 하시려는 사랑의 손짓임을 기억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을 행하신 이유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들려주기 위함입니다.

  본문 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게 내가 애굽에 행한 일들 곧 내가 그들 가운데서 행한 표징을 네 아들과 네 자손의 귀에 전하기 위함이라”(2) 이는 단지 애굽을 향한 경고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세대를 넘어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기억하고 전하게 하시려는 뜻입니다. 출애굽 사건은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닌, 대대로 전해져야 할 살아 있는 간증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구원은 지식이 아니라 삶으로 경험되고 다음 세대에 믿음으로 전수되어야 할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과 연약함조차 자녀가 여호와를 알게 되는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시편 78편은 이렇게 강조합니다. “우리가 이를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그들로 하나님께 소망을 두게 하려 함이라.” 신앙은 말하지 않으면 잊히고, 보여주지 않으면 외면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다음 세대에게 들리게 하라.” 신명기 6장은 이를 더 분명히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 일상 모든 순간에 강론하라.”

 신앙 교육은 교회만의 몫이 아니라, 부모가 삶으로 감당해야 할 사명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자녀에게 세상 지혜는 열심히 가르치면서,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는 말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씀도, 기도도, 예배도 삶 안에서 보여주지 않는다면 자녀는 하나님을 중요하지 않게 여기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음 세대에게 신앙을 전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순종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이 형식적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아는 예배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들리게 하십시오. 은혜를 나누십시오. 예배를 삶으로 보여주십시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 가정을 믿음의 전승 통로로 부르고 계십니다.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우리 가정이 자녀가 여호와를 잊지 않게 하는 복된 통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을 행하신 궁극적인 이유는 당신의 백성이 여호와께 예배를 드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출애굽기의 중심 주제는 단순한 해방이 아니라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단지 고된 노동에서 해방시키려 하신 것이 아니라, 참되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백성으로 세우기 위해 부르셨습니다. 출애굽기 81절에서 하나님은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Worship)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글 성경은 섬김이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영어 성경을 보시면 Worship, ‘예배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본문 9절에서 모세는 우리가 여호와 앞에 절기를 지키려 하니 모두가 함께 가야 합니다라고 선언합니다. 영어 성경은 이를 “celebrate a festival to the Lord”로 번역하며, 예배가 의무가 아닌 기쁨과 감사의 축제임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바로는 부분적 예배를 제안합니다. 남자들만 가라, 가족을 남겨두고, 재산도 두고 가라는 식입니다. 이는 오늘날로 말하면 마음만 드려라, 삶은 네 뜻대로 살라는 것과 같습니다. 이에 대해 모세는 단호하게 거절하며, 예배는 전인격적이며 전 세대적이고 전 소유적이어야 함을 밝힙니다.

 하나님은 일부가 아니라 전부를 원하십니다. ‘주일만 드리는 신앙’, ‘겉모습만 신자인 삶은 하나님이 받으실 예배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 시간, 가정, 재물, 삶 전체를 드리는 거룩한 산 제사(로마서 12:1)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본문 11절에서 바로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거부하는데, 영어 성경은 “No! Never!”라고 번역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배의 주권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음을 분명히 깨닫게 됩니다. 예배는 인간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드려야 할 거룩한 부르심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배를 소비하거나 선택의 문제로 여기지 않고, 우리를 삶 전체를 드리는 예배자로 부르신 하나님의 뜻에 응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예배의 자리로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전심과 전 생애로 하나님을 높이는 삶을 살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바로의 완악함조차도 사용하셔서 당신의 이름을 높이십니다. 하나님은 세대에서 세대로 구원의 이야기를 전하게 하시며, 우리 삶의 모든 의지할 만한 것들을 무너뜨리셔서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일부 순종이 아닌, 전적인 순종과 전적인 예배를 요구하십니다. 이 모든 목적은 한마디로 정리됩니다. “너희가 내가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의 인생 전체가 하나님을 드러내는 통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가정과 자녀, 일터와 여가 시간과 물질까지 모두 하나님께 드리길 축복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삶, 그분만을 예배하는 삶, 그리고 그 하나님을 다음 세대에게 전하는 삶을 살아, 축복의 통로로 사용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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