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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22일
2026-07-16 09:47:30
꿈미
조회수   16

감출 수 없는 죄, 피할 수 없는 하나님

 

일시: 2026722

본문: 사무엘하 11:13-27

 

미국의 유명한 심리학자이자, 행동주의 심리치료학자인 호바트 모러는 인간이 겪는 불안이나 심리적 고통의 원인을 분석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은 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병 드는 것이 아니라, 그 잘못을 숨기려고 하기 때문에 병든다.” 참 의미 있는 말입니다. 사실 죄는 누구나 지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합니다. 문제는 죄를 지은 이후입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회개하느냐, 아니면 어떻게든 죄를 감추려고 하느냐가 우리의 인생을 결정합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잘못을 숨기는 데 익숙합니다. 아이들은 물건을 깨뜨리고도 내가 안 했다발뺌하고, 어른이 되어서도 직장에서의 실수를 남의 탓으로 돌리거나 가정에서 상대방의 잘못을 먼저 들추어내곤 합니다. 왜 그럴까요? 죄를 인정하는 순간 내가 무너지고, 체면을 잃고, 사람들이 나를 떠나갈 것 같은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죄를 해결하기보다, 죄를 감추는 데 온갖 변명과 핑계를 대며 많은 에너지를 씁니다. 그러나 여러분, 죄는 감춘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상처를 붕대로만 감싸 놓는다고 낫지 않는 것처럼, 죄도 덮는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덮어둘수록 더 깊이 곪아갑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사무엘하 11장은 바로 그것을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흔히 다윗의 죄라고 하면 밧세바와의 간음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시려는 것은 간음 사건 자체보다 그 죄를 짓고 난 이후 죄를 감추려는 다윗의 모습입니다. 다윗은 우리아를 불러왔습니다. 집으로 보내려 했습니다. 뜻대로 되지 않자 술까지 먹였습니다. 그래도 실패하자 결국 가장 충성스러운 부하를 죽이는 명령을 내립니다. 죄 하나를 감추려다가 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자리까지 내려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알다시피 다윗은 본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군대를 비방하는 골리앗 앞에 믿음으로 섰던 사람입니다. 사울을 죽일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지만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종이라는 이유로 칼을 거두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는 칭찬을 들었던 인물이 바로 다윗입니다.

그런 다윗도 죄를 감추기 시작하자 이렇게까지 무너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다윗을 손가락질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통해 오늘 우리의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감추고 있는 죄는 없습니까? 겉으로는 경건해 보이지만 하나님 앞에 내려놓지 못한 죄는 없습니까? 사람들은 속일 수 있지만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보고 계십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도 하나님의 시선 앞에 서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시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세 가지 영적인 교훈을 함께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1. 죄는 사람의 양심을 무디게 만듭니다.

 

오늘 본문에서 가장 안타까운 인물은 다윗입니다. 왜냐하면 죄가 그의 양심을 완전히 마비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3절 상반절 말씀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다윗이 그를 불러서 그로 그 앞에서 먹고 마시고 취하게 하니”(13a) 다윗은 우리아에게 술을 권합니다. 여러분, 왕이 직접 술을 권한다는 것은 큰 호의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우리아에게 술을 권하는 것은 선의가 아닙니다. 술에 취하면 그가 집으로 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아는 충성스러운 신하였습니다. 그는 취하고도 집으로 가지 않고 부하들이 있는 전쟁터로 다시 나아갔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마지막 방법을 선택합니다. 요압에게 편지를 써서 보냅니다.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 앞에 두고 너희는 뒤로 물러가서 그로 맞아 죽게 하라”(15) 여러분, 참으로 충격적인 장면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편지를 우리아의 손에 들려 보냈다는 것입니다. 우리아는 자신이 들고 가는 편지가 자신의 사형선고인 줄도 몰랐습니다. 꿈엔들 생각을 했겠습니까? 그는 왕의 명령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신뢰를 가장 잔인하게 이용한 사람이 바로 다윗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여기에서 죄의 무서움을 봅니다. 죄는 사람의 양심을 무디게 만듭니다. 예전의 다윗이라면 이런 일을 상상이나 했을까요? 골리앗 앞에 선 다윗,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내가 어찌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겠느냐며 칼을 거두었던 다윗, 그 다윗이 이제는 충성스러운 부하를 죽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180도 바뀐 사람으로 만들었을까요? 권력입니까? 환경입니까? 외적인 요인입니까? 아닙니다. 죄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윗이 회개하지 않은 그 죄가 그를 이렇게 무너지게 만든 것입니다. 여러분, 죄를 품고 회개하지 않으면 그 죄는 우리가 알게 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우리의 영혼과 양심을 무디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우리의 양심을 깨워야 합니다. 무뎌져서는 안 됩니다. 말씀을 통해 깨워야 하고, 기도를 통해 깨워야 하고, 예배를 통해 우리의 양심을 계속 깨워야 합니다.

혹시 이 자리 가운데 요즘 말씀이 들리지 않는 성도가 있습니까? 기도를 해도 아무런 감동이 없는 성도가 있습니까? 죄를 지어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는 성도가 있습니까? 여러분, 영적으로 가장 위험한 사람은 넘어지는 사람이 아닙니다. 넘어지고도 아파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회개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죄를 숨기려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죄를 숨기는 자가 아니라, 죄를 회개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됨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2. 죄는 반드시 누군가에게 상처를 남깁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죄를 개인적인 문제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결코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죄는 절대로 개인적인 사건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죄는 반드시 관계를 파괴하고, 공동체를 무너뜨리고, 누군가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오늘 본문의 다윗을 한번 보기 바랍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 우리아 한 사람만 죽이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죄의 결과는 우리아 한 사람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전쟁터에서 우리아 곁에 있던 여러 용사들이 함께 죽었습니다. 그리고 요압은 왕의 명령을 수행하며 죄의 공범자가 되었습니다. 밧세바는 사랑하는 남편을 잃고 한순간에 남편 없는 여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군대는 불필요한 희생을 치러야 했습니다.

지금 다윗 한 사람의 잘못된 욕망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되고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까? 다윗은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을 했지만, 그 선택의 대가는 수많은 사람의 고통으로 돌아왔습니다. 이것이 죄의 무서움입니다. 우리는 죄는 항상 나만의 문제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죄는 반드시 나를 넘어 다른 사람에게 흘러갑니다. 가정에서 한 사람의 죄는 가족 전체를 아프게 합니다. 부모의 잘못된 선택은 자녀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지도자의 타락은 공동체 전체를 흔들어 놓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를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죄를 작게 보는 순간, 우리는 죄의 파괴력을 간과한 것입니다.

이런 생각해 본 적 있습니까? ‘이 정도는 괜찮겠지?’, ‘아무도 안 보는데 괜찮겠지?’ 그러나 여러분, 기억하기 바랍니다. 나의 죄는 결코 나 하나로 끝나지 않습니다. 죄는 파급력이 있어서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을 무너뜨리고, 내 공동체를 무너뜨린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내가 품는 마음이 다른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숨긴 욕심이 누군가의 눈물을 만들 수 있습니다. 내가 방치한 죄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 앞에서 이렇게 질문해야 합니다. “이 죄 때문에 누군가가 아파하고 있지는 않는가?” 성숙한 믿음은 죄의 결과를 생각하는 믿음입니다. 내 행동이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지, 그리고 내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매일매일 돌아보는 자가 하나님의 사람임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의 침묵은 하나님의 용서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는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죄에 대해 즉각적으로 벌을 내리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다윗이 죄를 범했습니다. 우리아를 죽였습니다. 밧세바를 아내로 삼았습니다. 그럼에도 조용합니다. 이것을 보고 다윗은 어쩌면 안심했을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이 모르니 나만 조용히 넘어가면 시간이 다 해결해 줄 거야.’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해결된 것처럼 보입니다. 겉으로는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온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마지막 한 절에서 그 모든 것을 뒤집습니다.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27b). 사람들의 눈에는 그것이 성공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악이었습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습니다. 사람의 평가도 속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 속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시기에 우리의 행동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까지도 보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결과를 보지만, 우리 하나님은 과정을 보십니다. 사람은 외적인 모습을 보지만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속마음을 보십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침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왜 하나님께서 바로 심판을 하지 않으셨을까요? 여러분, 하나님의 침묵은 무관심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회개의 기회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향해 오래 참으시는 분이십니다. 당장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돌아올 시간을 주시는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나 그 은혜의 시간을 계속해서 거부할 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오늘 말씀에는 나오지 않지만,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보내 다윗의 죄를 고발하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에 더 이상 자신의 죄를 숨길 수 없었습니다. 왕의 자리도 내려놓았습니다. 체면도, 자신의 의로움도 다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회개합니다. 그리고 회개할 때 그는 다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가 됩니다.

혹시 이 자리에 나온 여러분 가운데, 죄를 지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성도가 있습니까? 여러분, 내 마음 가운데 찔림이 없다고, 또는 하나님이 침묵을 하신다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줄 착각하고 안심하지 말길 바랍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침묵은 죄를 허락하시는 침묵이 아니라,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침묵임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의 마지막 말씀은 우리 모두 앞에 놓인 하나님의 엄숙한 평가입니다.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이 문장이 오늘 우리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은 성공을 보고, 업적을 보고, 사람들의 열광을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르게 보십니다. 하나님은 여호와 보시기에 어떠한가를 보십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도 머지않아 하나님의 평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때 어떤 평가를 받기를 원합니까?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보고 계시는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감추는 자가 아니라 죄를 하나님 앞에 가져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죄를 숨기면 죄가 우리를 지배합니다. 그러나 죄를 고백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회복시킵니다. 오늘 이 시간이 죄를 숨기는 시간이 아니라 죄를 내려놓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사람의 평가를 기준 삼지 않고, 날마다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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