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지기의 자세와 사명
일시 : 2026년 7월 11일
본문 : 사무엘하 5:6-12
우리가 사는 집 한구석에는 오랫동안 열어보지 않은 '방치된 공간'이나 짐만 잔뜩 쌓아둔 '창고'가 하나쯤 있기 마련입니다. 처음에는 그 공간을 정리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지만, 시간이 지나면 짐을 치우는 과정이 너무 번거롭고 피곤해서 결국 그 불편함에 익숙해져 버립니다. '어차피 닫아두면 안 보이니까, 그냥 이대로 살자'라며 스스로와 타협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삶에도 이처럼 수십 년간 방치해 둔 '마음의 창고'가 있습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고질적인 죄악, 응답이 되지 않아 포기해 버린 기도 제목, 혹은 수년째 평행선을 달리는 깨어진 관계들이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 문제와 직면하기보다, 아픔을 피하고 편안함을 유지하려는 연약한 본성 탓에 그 문제들과 적당히 거리를 둔 채 살아갑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예루살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로 그런 방치된 창고이자, 익숙해진 불편함이었습니다.
1. 타협이 아닌 은혜의 돌파
온 이스라엘의 통일 왕이 된 다윗이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의 여부스 사람들을 치러 올라갑니다. 예루살렘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후, 무려 400여 년의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완전히 정복해 본 적이 없는 땅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지형을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기드론 골짜기, 힌놈의 골짜기 등 가파른 협곡으로 둘러싸여 있는 해발 800미터의 천연 요새였습니다. 적들이 쳐들어오려면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기어 올라와야 했기에 방어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였고, 공격하기에는 최악의 조건이었습니다. 훗날 당대 최고의 제국이었던 바벨론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함락시킬 때도 무려 1년 반 동안이나 성을 포위하고 처절한 사투를 벌여야만 했을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막 사울 왕가의 오랜 견제를 끝내고 온 이스라엘의 통일 왕이 된 다윗의 입장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굳이 무리해서 이 어려운 전쟁을 시작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이미 왕권은 확립되었고, 백성들은 다윗을 지지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이 난공불락의 요새를 공격하다가 실패라도 한다면, 이제 막 안정되기 시작한 왕권이 크게 흔들릴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도박이었습니다. 400년 동안 수많은 사사들과 지도자들도 포기했던 땅입니다. 인간의 얄팍한 계산과 편안함을 추구하는 본성이라면, "이쯤에서 만족하자. 지난 400년 동안 안 된 일인데 내가 굳이 피를 흘릴 필요가 있나?"라며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훨씬 지혜로운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왜입니까? 그 땅이 비록 난공불락의 요새일지라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허락하신 '언약의 중심지'였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눈앞의 지형적 험난함이나 정치적 유불리라는 '상황'을 보지 않았습니다. 오직 그 땅을 약속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자신의 군사력을 의지한 것이 아니라, 약속을 성취하실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여 담대히 나아갔습니다.
우리 안에도 이 400년 된 여부스 족속과 같은 견고한 진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내 의지로는 도저히 꺾이지 않는 혈기, 수년째 응답의 기미가 보이지 않아 입을 닫아버린 기도 제목, 더 이상 상처받기 싫어 철저히 단절해 버린 가족이나 교우와의 관계 등, 우리 삶에는 포기가 너무나 자연스러워진 예루살렘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절망의 장벽을 오르길 원하시고, 그 길이 회복의 길이라면, 우리는 불편함에 굴복하거나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우리의 결심이나 ‘할 수 있다’는 식의 자기 최면만으로는 결코 400년 묵은 요새를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정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골고다의 언덕, 그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편안하고 영광스러운 길을 택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굳어진 죄악의 요새를 무너뜨리시기 위해 친히 살이 찢기고 피 흘리는 십자가의 고난을 직면하셨습니다. 그 십자가의 은혜와 능력이 나를 덮을 때, 비로소 우리는 두려움을 떨치고 내 삶의 '예루살렘'을 향해 은혜의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것입니다.
2. 청지기의 사명
그렇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다윗은 철옹성 같던 예루살렘을 정복합니다. 이후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은 이스라엘은 전례 없는 안정과 번영을 누리게 됩니다. 그 번영의 규모가 어느 정도였는지가 11절에 나타납니다. 두로의 왕 히람이 사절단을 보내며, 최고급 건축 자재인 백향목과 뛰어난 목수, 석수들을 다윗에게 보냅니다. 두로는 당대 엄청난 부를 축적한 해상 무역의 중심 국가였습니다. 그런 강대국의 왕이 먼저 다윗에게 호의를 베풀며 궁궐을 지어주겠다고 나선 것은, 다윗의 국제적 위상이 그만큼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졌음을 의미합니다. 삶의 모든 닫힌 문이 활짝 열리고, 승승장구하며 번영의 최정상에 우뚝 선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이란 참으로 간사한 존재입니다. 고난과 위기의 순간에는 납작 엎드려 하나님을 찾다가도, 문제가 해결되고 번영의 꼭대기에 서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내 지혜, 내 능력 덕분이다", "내 헌신과 눈물의 기도 때문이다."라고 나의 수고를 조금은 더 내세우려 합니다. 그런데 본문 12절을 보면, 다윗은 그 화려하게 지어지는 백향목 궁궐 한가운데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누리는 이 거대한 번영과 영광이 결코 자신의 군사적 능력이나 정치적 수완 때문이 아님을 정확히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자신을 세우셨음을 온전히 인정했습니다. 더 나아가, 이 모든 은혜를 쏟아부어 주신 궁극적인 목적이 '다윗 개인의 안락함과 영광'을 누리게 하려 하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섬기고 먹이게 하기 위함'이라는 청지기적 사명을 뼈저리게 깨달은 것입니다.
우리 삶에 방치되었던 '예루살렘'의 문제가 마침내 해결되고, 취업의 문이 열리며, 재정의 안정이 찾아오고, 질병이 치유되었을 때 우리는 어떻게 반응합니까? 그저 내 삶이 편안해진 것으로 안도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은혜를 깊이 체험한 성도는 높아짐과 번영의 자리에서 오히려 고개를 숙여야 합니다. 내게 허락하신 건강, 재물, 사회적 지위, 그리고 안정된 가정이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잠시 위임받은 것임을 두렵고 떨림으로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삶을 돌아봅시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 앞에서 안일하게 타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마치 내 능력인 양 착각하며 교만의 바벨탑을 쌓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영적 안일함과 교만을 깨뜨리기 위해,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의 모든 영광과 번영을 내려놓으시고 가장 낮은 자리, 십자가로 걸어가셨습니다. 그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옭아매던 죄와 사망이라는 가장 견고한 요새를 영원히 무너뜨리셨습니다.
오늘 하루, 내 힘으로 무언가를 해보려는 생각을 십자가 앞에 모두 내려놓기를 바랍니다. 견고해 보이는 문제 앞에서는 나를 도우시는 십자가의 능력을 의지하여 담대히 맞서고, 내게 주신 은혜와 평안 앞에서는 자신을 내어주신 주님의 마음을 품고 이웃을 섬기는 청지기로 살아가십시오. 나의 연약함을 덮으시고 참된 승리를 주시는 그 완전하신 은혜 안에서, 오늘 하루도 넉넉히 이기며 걸어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번호 | 제목 | 작성자 | 등록일 | 조회수 | 첨부 파일 |
|---|---|---|---|---|---|
| 공지 | 설교문은 참고용 자료입니다. | 꿈미 | 2019-09-07 | 1080 | |
| 3925 | 2026년 7월 22일 | 꿈미 | 2026-07-16 | 16 | |
| 3924 | 2026년 7월 21일 | 꿈미 | 2026-07-16 | 9 | |
| 3923 | 2026년 7월 20일 | 꿈미 | 2026-07-16 | 10 | |
| 3922 | 2026년 7월 19일 | 꿈미 | 2026-07-14 | 24 | |
| 3921 | 2026년 7월 18일 | 꿈미 | 2026-07-14 | 34 | |
| 3920 | 2026년 7월 17일 | 꿈미 | 2026-07-13 | 43 | |
| 3919 | 2026년 7월 16일 | 꿈미 | 2026-07-12 | 59 | |
| 3918 | 2026년 7월 15일 | 꿈미 | 2026-07-10 | 71 | |
| 3917 | 2026년 7월 14일 | 꿈미 | 2026-07-10 | 53 | |
| 3916 | 2026년 7월 13일 | 꿈미 | 2026-07-09 | 66 | |
| 3915 | 2026년 7월 12일 | 꿈미 | 2026-07-08 | 54 | |
| 3914 | 2026년 7월 11일 | 꿈미 | 2026-07-08 | 56 | |
| 3913 | 2026년 7월 10일 | 꿈미 | 2026-07-08 | 69 | |
| 3912 | 2026년 7월 9일 | 꿈미 | 2026-07-08 | 65 | |
| 3911 | 2026년 7월 8일 | 꿈미 | 2026-07-03 | 7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