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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15일
2026-07-10 09:59:10
꿈미
조회수   72

신앙의 본질

 

일시 : 2026715
본문 : 사무엘하 7:1-17

 

 

소위 이신칭의교리는 사람이 자신의 행위와 공로가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교리입니다. 그런데 종교 개혁자 루터가 처음부터 이 교리를 가지고 신앙생활 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는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에 있을 때, 매일같이 하나님께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파양의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래서 고행의 명분으로 돌바닥에서 잠을 자고 금식하며, 하루 6시간씩 고해성사를 했습니다. 고해성사를 마쳤지만 미처 회개하지 못한 작은 죄가 생각나면 언제든 다시 고해성사의 자리로 나아갔습니다. 참다못한 신부는 제발 진짜 죄다운 죄를 들고 오라며 꾸짖었습니다. 루터의 문제는 무엇이었습니까? 이미 십자가의 은혜로 부름받은 자녀임에도, 율법의 행위로 인정받으려 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헛된 일입니다. 지구상의 그 어떤 인간도 루터의 이 고민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흔히 은혜의 종교라 말합니다. 은혜란 행위의 법칙이 아닌, 우리에게서 시작되지 않은 다른 법칙이 우리를 살리는 원리입니다.

다윗은 왕궁에 언약궤를 모신 후 승승장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으로 하여금 모든 원수를 무찌르고, 궁에서 평안히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런 다윗에게 한 가지 고민이 생겼습니다. ‘나는 이렇게 편한데, 하나님은? 은혜를 주셨으니, 은혜를 갚자.’ 그러나 이것은 신앙의 본질이 아닙니다. 은혜받은 우리는 자꾸만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 해야 한다(Doing)는 강박에 시달립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소위 다윗 언약을 통해 깨닫는 신앙의 본질은 내가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행위(Doing)가 아닙니다. 하나님 안에서 내가 누구인가를 깨닫는 존재’(Being)와 베푸신 구원을 누리는 것’(Resting & Enjoying)입니다.

 

1. 신앙의 본질: 존재(Being)

 

나단은 다윗의 근심을 알았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화려한 백향목 궁에 비해, 하나님의 궤가 초라한 휘장 가운데 있음이 너무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집, 성전을 지어드리고 싶었습니다. 다윗의 이 마음과 동기가 너무 귀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제동을 거십니다. 본문 5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하나님은 결핍이 없으십니다. 초라한 휘장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이 훼손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초라한 휘장과 그 공간이 하나님으로 인해 영광스러워집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제안을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거절하시면서 그와의 본질적인 관계를 알려주십니다. 8-9절입니다.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 ...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8-9) 하나님은 다윗과의 관계 속에서 단 한 번도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십니다. 다윗을 부르사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신 것과 위대한 이름으로 사용하시는 것 모두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다윗의 가치는 훌륭한 업적이 아니라, 하나님과 맺어진 독특한 관계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하나님 앞에 무언가로 증명하지 않아도, 자녀라는 존재로서 하나님과 이미 특별한 관계를 유지합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로 하여금 자신을 증명하는 일에 에너지를 소비하게 합니다. 스펙이 무엇이냐, 연봉은 얼마냐, 잘할 수 있는 일이 뭐냐, 어떤 성과를 냈느냐 등으로 내가 해낸 업적이 곧 나의 존재 가치라 속이며 가르칩니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증명하다 보면, 영혼이 정말 탈탈 털립니다. 그렇게 잊힐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말씀을 통해 위로를 주십니다. 9절입니다.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을게

 

2. 신앙의 본질: 누림(Enjoying & Resting)

 

두 번째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이 다 이루신 것을 기뻐하며 누리는 것입니다. 11절입니다. “전에 내가 사사에게 명령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아니하게 하고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벗어나 편히 쉬게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11) 쉽게 말해 하나님은 지금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네가 내 집을 짓지 않고, 내가 네 집을 지어이 집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건물이 아니라, 영원히 멸망하지 않을 다윗의 왕조를 말합니다. 이 약속은 궁극적으로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벽하게 성취됩니다.

말씀이신 예수께서 모든 신자들 가운데 장막을 치고 거주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영원히 누리고 거주할 참된 집이십니다. 목수이셨지만 예수님은 우리가 살 집을 나무 목재와 손으로 지어주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나무는 십자가 죽음을 위한 사형 틀로 사용하셨습니다. 십자가의 피로 이루신 승리, 죄와 사망으로 죽을 몸을 구원하사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얻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생명을 내어던져 이루신 완벽한 구원의 열매를 생각해야 합니다. 숨을 거두시기 전, 온 우주를 향해 선포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이는 율법의 저주 아래서 두려워 떨며 감당했던 모든 종교적인 행위(Doing)의 짐을, 십자가의 죽음으로 다 계산하고 구원을 완성했다는 선언입니다.

그런 완벽한 집에 거하는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Enjoying & Resting, 즐거움으로 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맺으신 언약의 핵심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문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종교생활이 아닙니다.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언약 안에서 값없이 주신 은혜를 평안히 누리며, 행하시는 일을 즐거움 가운데 찬양하는 것입니다.

 

 

가령 입양한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는 부모가 있다고 가정합시다. 그런데 이 아이는 집에 온 날부터 쉬지 않고 집안일을 하며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려고 합니다. 괜찮다 말해도 늘 불안해서 하루도 편안히 누리지 못합니다. 작은 실수에도 파양되어 다시 고아원으로 쫓겨날까 봐 매일같이 불안해합니다. 냉동실 문 너머에 아이스크림 하나도 꺼내길 두려워합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부모는 아이를 자녀로 입양했는데, 아이는 여전히 스스로를 고용된 종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이 아이는 자신이 부모님을 위해 '무엇을 하느냐(Doing)'에 따라 자신의 가치와 사랑받을 자격이 결정된다고 믿었습니다. 부모님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아이가 집안일을 거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사랑받는 자녀라는 '존재(Being)' 자체를 깨닫고, 부모가 베푸는 사랑과 식탁을 기쁨으로 '누리는 것(Enjoying)'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와 같을 때가 있지 않습니까? 자꾸만 하나님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한다(Doing)'는 강박에 나의 열심이 하나님의 사랑을 얻어내는 조건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분명히 선언합니다. 신앙의 본질은 내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하는 '행위(Doing)'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내가 누구인지 깨닫는 '존재(Being)', 그분이 베푸신 구원을 '누리는 것(Resting/Enjoying)'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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