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벧에돔과 미갈
일시 : 2026년 7월 14일
본문 : 사무엘하 6:12-23
사역을 마치고 집에 들어갈 때, 한 번씩 두 손 가득 간식을 사 갈 때가 있습니다. 자녀들이 아빠가 아닌, 손에 들린 간식꾸러미에 더 관심을 가질 때 살짝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언젠가 한 분이 인상적인 말씀을 주셨습니다. 외출하고 돌아온 자신에게 그저 반기며 꼬리를 흔들어 주는 반려견이 있어서 행복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자녀들이 우리 손에 들린 간식꾸러미보다 우리 자신을 반겨주기를 바라듯 하나님도 우리가 순전한 마음으로 섬기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욥기에서 사탄이 하나님께 던진 도전적인 질문입니다.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욥 1:9) 사탄은 거의 확실하게 욥이 하나님을 섬길 만한 외적인 이유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제 묻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까닭 없이 사랑하십니까?
오늘 본문에는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다윗과 오벧에돔, 미갈입니다. 특히 12절과 23절은 복과 저주라는 완전히 다른 결과를 겪은 두 인물을 대조하며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어떤 태도로 서 있어야 하는지를 교훈합니다. 사무엘서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대주제는 사무엘상 2장 30절입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삼상 2:30) 본문은 완전히 대조되는 두 사람, 오벧에돔과 미갈의 삶을 우리 앞에 소개합니다. 두 사람을 조명함으로 우리 자신의 영적인 현주소를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1. 오벧에돔: 순전함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모신 자
지금까지 언약궤는 인간의 욕망을 채우는 도구였습니다. 엘리에 속한 자들에겐 전쟁 승리를 위한 부적이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에겐 다곤과 함께 나라를 번영시켜 주는 신령한 도구였습니다. 심지어 다윗에겐 통일왕국의 왕으로서 열두 지파의 정치적 결속과 자신의 통치력 강화를 위한 도구였습니다. 모두 다 궤를 ‘까닭 있게’ 이용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오벧에돔은 달랐습니다. 다윗의 사람들이 무작정 메어 가지고 온 궤를 떠맡아야 했습니다. 더욱이 불과 얼마 전에 웃사가 죽었습니다. 마치 벧세메스로 향한 소처럼 선택의 여지도 없이 순종해야 했습니다. 아무런 계산 없이 경외함으로 언약궤를 모시고 석 달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12절입니다. “어떤 사람이 다윗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 한지라”(12절) 하나님은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하나님을 도구화하는 자들에게는 두려운 심판자이시지만, 계산 없이 순전한 마음으로 주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에게는 한량없는 은혜와 복을 베푸시는 아버지이십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긴다”는 사무엘상 2장 30절의 말씀이 완벽히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까닭 없이 순전함으로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수많은 사람이 까닭이 있어 따르고 있음을 간파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요 6:26) 하나님은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잠 22:4) 다윗은 오벧에돔이 받은 복이 궤로 인한 것임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래서 멈추었던 궤 이동을 재개하기로 합니다.
2. 미갈: 냉소로 하나님의 임재를 멸시한 자
오벧에돔의 집에 복을 주신 소식이 들렸어도 다윗에게 궤 이동은 여전히 조심스러웠습니다. 웃사의 죽음은 ‘영적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불러오기에 충분했습니다.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걷자, 다윗이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여섯 걸음은 완전수 7에서 하나 부족한데, 매우 신중한 태도로 마지막 걸음을 뗐습니다. 궤는 안전하게 다윗의 성으로 들어왔고, 다윗은 참을 수 없는 기쁨으로 온 힘을 다해 춤을 춥니다. 14절은 이 춤이 ‘여호와 앞에서’ 한 일임을 강조합니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춤을 추고 있을 때, 창문 너머로 다윗을 못마땅히 바라본 자가 있습니다. 다윗의 아내 미갈입니다. “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그를 업신여기니라”(16절) 그녀는 온 이스라엘의 축제의 현장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스스로를 은혜에서 제외된 자처럼 행동합니다. 본문에서는 세 번씩(16,20,23절)이나 미갈을 ‘다윗의 아내 미갈’이 아닌, ‘사울의 딸 미갈’로 소개합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를 철저히 무시하던 사울의 DNA를 그대로 물려받은 것 같습니다. 미갈의 냉소적인 태도는 마음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축제를 마친 다윗이 왕궁으로 돌아왔을 때, 미갈의 비방이 시작됩니다. 20절입니다. “이스라엘 왕이 오늘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 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 그의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20절) 표면적으로 보면 미갈이 다윗을 비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적인 본질은 다윗이 온몸으로 예배한 하나님을 멸시하는 말입니다. 21절입니다.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그가 네 아버지와 그의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를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21절) 21절은 ‘여호와 앞에서’라는 문구로 처음과 끝을 구성하는 인클루지오를 형성합니다.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춤을 춘 반면, 미갈은 여호와 앞에서 비방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멸시한 결과는 참으로 비참했습니다. 23절입니다. “그러므로 사울의 딸 미갈이 죽는 날까지 그에게 자식이 없으니라”(23절) 사무엘서 전체를 관통하는 대주제가 여기에도 적용되고 있습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삼상 2:30)
본문에서 두 사람 ‘오벧에돔’과 ‘미갈’을 통해 우리의 영적인 현주소를 점검해 보았습니다. 오벧에돔은 순전함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모셨습니다. 반면 미갈은 하나님의 임재를 멸시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영적 현주소는 어디에 있습니까? 창문 뒤에 서서 구경꾼으로 지내며, 냉소적인 태도로 은혜의 방관자로 살아가지는 않습니까? 예배의 감격을 잃어버린 채 자기 생각과 판단으로 비판하고 정죄하는 냉소주의에 빠지지는 않았습니까? 우리는 미갈이 보인 냉소와 차가운 시선을 버려야 합니다. 그것은 은혜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오벧에돔과 다윗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순전한 태도로 하나님을 섬긴 것입니다. 모두가 성공과 번영의 수단으로 언약궤를 이용하려 했지만, 오벧에돔은 까닭 없는 헌신으로 하나님께 큰 복을 받았습니다. 다윗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왕이지만 스스로를 겸손히 낮추고 계산 없이 순전함으로 예배하여 하나님이 높여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영적 주소지를 확실히 정해야 합니다. 오래전 죽음을 목전에 둔 여호수아가 유언과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던진 도전으로 말씀을 정리합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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