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이 영광이 됩니다
일시 : 2025년 10월 6일
본문 : 누가복음 1:67-80
현대 사회는 침묵을 견디기 힘들어 합니다. 모여서 대화를 나누다가 잠깐이라도 오디오가 비면 어색해집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낯선 사람들과 서 있을 때, 그 짧은 정적이 왜 그렇게 길게 느껴지는지요. 그래서 무조건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 봅니다. 어떤 사람들은 집에 올 때 집이 고요한 게 싫다며 티비를 미리 켜 놓기도 합니다. 침묵이 어색한 것이죠. 허전하고, 공허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곧장 응답이 들리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해집니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혹시 하나님은 나를 잊으신 게 아닐까?’라는 의심이 고개를 듭니다. 우리는 기다림보다 빠른 대답을 원하고, 고요보다 즉각적인 소리를 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역설적으로, 바로 그 침묵의 순간을 허락하십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는 것이죠.
바로 사가랴가 그랬습니다. 그는 제사장이었고,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었지만, 천사의 약속을 온전히 믿지 못했습니다. 그 불신으로 인해 그의 입은 닫혔고, 긴 침묵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 침묵이 끝났을 때, 그의 입술에서 터져 나온 것은 원망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였습니다. 침묵이 끝나자 영광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침묵의 시간을 통해 이루시는 역설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이 시간. 우리의 삶 가운데 겪는 침묵을 꺼내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침묵은 무엇입니까? 대답 없는 기도입니까? 끝나지 않는 고난, 설명할 수 없는 기다림입니까? 우리가 믿을 수 있길 바랍니다. 그 침묵은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침묵을 통해 우리 힘을 내려놓게 하시고, 당신의 주권과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그리고 반드시 그 침묵은 찬양으로 바뀝니다. 오늘 우리는 사가랴의 노래를 통해, 인간의 침묵이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으로 전환되는지를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1. 침묵은 하나님의 임재를 준비하는 자리다.
사가랴의 노래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68절) 여기서 ‘돌보사’라는 말은 헬라어로 단순히 ‘관심을 갖다’ 정도가 아니라 ‘찾아오다, 방문하다’라는 뜻을 가집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친히 우리를 찾아오시는 분이라는 고백이지요.
그러나 사가랴가 이 고백에 이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는 천사의 약속을 듣고도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입이 닫히는 침묵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이는 믿음 없는 불신앙의 대가 같아 보이지만, 사실 그 침묵은 하나님의 방문을 준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온전하신 주권을 의지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의 입술은 닫혔지만, 마음은 그 침묵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리게 되었고, 결국 약속이 성취되는 순간, 그 입술은 하나님의 임재를 맞이하는 가장 강력한 찬양으로 열리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침묵은 하나님이 오실 자리를 비워 놓는 시간이 된 것입니다.
이 원리는 구약의 사건 속에서도 반복됩니다. 여리고 성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6일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성을 돌았습니다(수 6:10). 그 침묵의 행진은 사람들의 눈에 답답하고 비효율적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침묵은 인간의 힘과 전략을 내려놓게 하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는 시간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마침내 일곱째 날, 그 침묵이 함성으로 바뀌자 성은 무너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났습니다. 침묵이 승리의 시작이 된 것입니다.
또 출애굽의 홍해 앞에서도 같은 패턴이 나타납니다. 앞에는 바다, 뒤에는 애굽의 군대가 쫓아오는 절망적인 순간에 모세는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출 14:13)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침묵의 시간이었지만, 그 자리에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결국 바다가 갈라지고 백성들은 마른 땅을 걸어가게 되었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살아가다 보면 비슷한 순간들을 맞이합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대답이 없고, 오히려 상황은 더 나빠지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답답해서 소리를 내고 싶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우리를 멈추게 하시고 침묵하게 하십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소리가 멈춰야 비로소 하나님의 발걸음이 더 선명하게 들리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힘과 방법을 내려놓아야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침묵은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방문하시고 구원하실 준비가 진행되는 시간입니다. 사가랴가 그랬고, 여리고 성 앞에서 이스라엘이 그랬고, 홍해 앞에서 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 우리 삶의 침묵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에 답답하고 막막한 침묵이 있습니까? 그 침묵은 하나님의 방문을 준비하는 자리입니다. 그분은 반드시 오셔서, 여러분의 입술을 찬양으로 열어 주실 것입니다.
2. 침묵은 구원의 빛을 드러내는 자리다.
사가랴의 노래는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78-79절) 여기서 ‘돋는 해’라는 표현은 새벽을 여는 햇살을 가리킵니다. 온 세상이 아직 어둠 속에 잠겨 있을 때, 지평선 너머에서 천천히 떠오르는 태양이 모든 것을 밝히는 장면을 연상시킵니다. 이것은 단순한 자연의 은유가 아니라,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주목할 점은 이 빛이 침묵과 기다림의 시간을 뚫고 나타났다는 사실입니다. 구약과 신약 사이, 약 400년 동안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선지자의 음성도, 새로운 계시도 없이 이스라엘은 영적 암흑기를 지났습니다. 그러나 그 침묵의 끝에 마침내 메시아의 빛이 임했습니다. 사가랴의 노래는 바로 이 긴 기다림의 어둠 속에 새벽 해가 떠오른 사건을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 46편 10절에서도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시 46:10)라고 하십니다. 인간의 소리와 분주함이 멈추고, 하나님 앞에 잠잠히 설 때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이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하박국 2장 20절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하시니라”(합 2:20). 하나님 앞의 침묵은 패배나 무력함이 아니라, 경외와 예배의 태도입니다. 인간의 소리가 멈추는 순간, 하나님의 빛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 원리는 우리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는 종종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것 같은 시간을 보냅니다. 진로가 막히고, 관계가 무너지고, 기도가 대답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 침묵은 참으로 두렵고 외롭습니다. 그러나 그 침묵은 결코 끝이 아닙니다. 그 자리에 ‘위로부터 임하시는 빛’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침묵을 통해 우리 시선을 낮추시고, 빛을 더 선명히 바라보게 하십니다. 결국 그 빛은 우리의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지금 여러분의 삶이 어두운 밤 같습니까? 혹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긴 침묵 속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본문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한다.” 이 약속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고, 지금도 우리를 향해 빛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억지로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침묵 속에서 주님의 빛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때 그 빛은 반드시 우리를 찾아오고, 우리의 발걸음을 평강의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은 침묵을 단순한 공백이나 무기력으로 보지 않습니다. 침묵은 하나님의 역사가 준비되는 자리이며, 결국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시작입니다. 사가랴는 불신으로 인해 침묵했지만,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순간, 그 침묵은 끝내 찬양으로 터져 나왔습니다. 여리고 성 앞의 침묵은 사람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승리를 주시는 순간을 준비했습니다. 홍해 앞의 침묵은 구원의 바다가 갈라지는 역사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시편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침묵은 패배가 아니라,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가장 깊은 신앙의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혹시 지금 여러분 중에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 같아 마음이 조급한 성도가 있습니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침묵의 시간을 걷고 있습니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 침묵은 헛된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에 오셔서, 빛을 비추시고,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 준비하고 계신 시간입니다. 인간의 소리가 멈추면, 하나님의 음성이 더 선명하게 들립니다. 우리가 힘을 내려놓으면,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납니다.
오늘 우리 모두의 고백이 이것이 되기를 원합니다. “침묵이 영광이 됩니다.” 우리의 기다림이 찬양으로, 우리의 침묵이 증거로, 우리의 눈물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바뀌는 역사가 이 자리에서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잠잠히 주 앞에 서십시오. 그리고 그분의 빛을 기다리십시오. 반드시 침묵은 찬양으로, 고난은 영광으로 바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은혜가 여러분 모두의 삶 가운데 충만히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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