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어버리면 잃어버립니다
일시 : 2025년 9월 19일
본문 : 신명기 28:47-68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풍족해질 것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삶이 풍족해지면 걱정 없이 살게 되고, 더 기쁘게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정반대의 상황이 등장합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고, 거기에서 그들은 풍족해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 기쁨과 즐거움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4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가 모든 것이 풍족하여도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47절).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48절부터 68절까지, 약 스무 절에 이르는 ‘불순종의 저주’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임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무슨 이유 때문에 ‘모든 것이 풍족한’ 그때에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는 것일까요? 풍족한데 왜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되는 것일까요? 은혜를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얻은 ’풍요로움‘의 출처가 신명기 6장 11절에 등장합니다. 신명기 6장 11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차지하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차지하게 하사 네게 배불리 먹게 하실 때에”(신 6:11) 아름다운 물건이 그들의 집에 가득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물건은 그들이 구입하지 않은 좋은 물건입니다. 그들이 구입하지도 않았는데 주어졌다면 거저 은혜로 주어진 것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그들이 파지 않은 우물에서 그들은 물을 마실 수 있습니다. 당시 팔레스타인 지방의 우물은 땅에서 솟는 샘,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우물이 아니라 우기 때의 물을 모아 건기 때 사용하기 위해 파낸 물 저장소였습니다. 우물이 있어야 건기 때 물이 부족하지 않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보통 바위를 파낸 후에 그곳에 물을 받아 덮어 놓은 후에 건기 때에 다시 꺼내 사용했습니다. 가나안 땅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이미 이런 우물들을 가지고 있었겠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자마자 이러한 물 저장소인 우물을 만들고 물을 비축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미 그 우물들을 준비해 두었다. 이러한 우물 또한 은혜로 주어졌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심지 않은 포도원과 감람나무 즉 올리브나무를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그들은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게 될 것입니다. 심지 않았음에도 마음껏 먹을 수 있게 됩니다. 은혜입니다.
은혜란 무엇입니까? 자격 없는 자에게 값없이 호의를 주면 그것이 은혜입니다. 엄밀히 따지면 받을 자격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택하신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래서 값없이 베푸는 호의를 받을 자격을 이미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충분합니다. 그 모든 풍요로움의 출처가 하나님이 그분의 자녀들에게 거저 주신 ‘은혜’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풍요로움, 풍족함이 은혜로 주어졌다는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이 사실을 잊어버리자 기쁨을 잃어버립니다. 헬라어로 은혜와 기쁨이라는 단어는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은혜는 ‘카리스’이고 기쁨은 ‘카라’입니다. 은혜와 기쁨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기쁨이 샘솟는 것입니다. 내가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할 때 기쁨을 회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풍족함이 은혜였음을 잊어버리고, 그 결과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오늘 하루를 은혜로 살 수 있을까요?
1. 자신의 한계를 인정해야 합니다.
첫째, 자신의 한계를 인정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풍요로움은 하나님이 은혜로 베푸셨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신명기 8장 17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신 8:17). ‘내 능력’, ‘내 손의 힘’이 이 재물을 얻게 했다고 그들은 생각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이 불순종의 결과로 허락하신 ‘저주’, 오늘 본문 48~68절까지의 내용들을 다시 한번 기억해 보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적군에게 에워싸입니다. 전국에서 이스라엘의 모든 성읍을 에워쌉니다. ‘모든 성읍에서 너를 에워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에워싼다’는 표현이 세 번이나 등장합니다. 순종으로는 자유를 얻을 수 있었지만, 불순종으로 인해 ‘에워싸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삶에 한계를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이 누릴 수 있던 모든 영역에 제한이 가해지기 시작합니다. 식량 공급, 안전한 통행에 제한이 가해집니다. 육체적인 제한입니다. 성 밖으로 눈을 들면 자연이 보였는데, 이제는 그들을 에워싸고 있는 적군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정신적인 제한입니다. 풍요로울 때는 몰랐습니다. 제한이 가해지자 한계를 깨닫기 시작합니다. 그들이 누리던, 당연한 줄 알았던 그 풍족함과 풍요로움이, 때로는 평범한 것 같았던 일상까지도 모두 하나님이 거저 주신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 것입니다.
왜 그때는 인정하지 못했을까요? 왜 그때는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만들어낸 건 줄 알았을까요? 아니었습니다. 은혜였습니다. 잠언 26장 1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잠 26:1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분의 은혜를 구하길 바랍니다.
이 세상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일을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우리 인간의 역사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과거 산업혁명은 인간의 노동을 편하게 해주는 기계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인간 체력의 한계’를 극복해 낸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인간의 공간 이동을 빠르고 편리하게 해주는 자동차, 비행기, 기차 등을 만들어 냈습니다. 공간의 한계를 극복한 것입니다. 2024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제프리 힌턴’은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은 지적 한계를 없애는 일에 몰두하는 역사를 우리는 살고 있다.” 과거 인간 체력과 공간의 한계를 극복했다면, 이제는 AI를 통해 인간의 지적인 한계를 극복하는 시대, 다시 한번 인간의 한계를 극복해 보자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기계와 도구들은 하나님을 알리고 전하는 일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수단들입니다. 다만, 이러한 수단들을 사용하여 인간에게 한계는 없다는 사고방식, 인간의 능력과 힘으로 이 모든 것들을 이루어냈다는 자아도취에 빠져버린 그 사고방식은 성경의 사고방식과 명확하게 대치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정신이 우리 주변에 만연하니,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인정하는 일이 얼마나 쉽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인간의 한계를 인정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시작된다.” 오늘도 내 능력, 내 손의 힘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나의 한계를 덮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 지금까지 인도해 오셨음을 고백함으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길 축복합니다.
2. 한계를 은혜로 덮어야 합니다.
오늘 하루 은혜 안에 거하기 위해 기억해야 할 두 번째는 나의 한계를 은혜로 덮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의 한계를 은혜로 덮어야 합니다. 세상은 자신의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하나님 없이 그 한계를 해결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조금 다릅니다. 그 한계를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아가 은혜로 덮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그 능력으로 나의 한계를 해결합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해결해야 할 인간의 한계는 무엇일까요? 바로 풍족할 때, 나도 하나님을 잊어버릴 수 있다는 그 한계입니다. 우리 인간의 연약함, 인간의 한계를 한 단어로 압축해 놓으면 바로 ‘교만’입니다. 교만한 마음 때문에, 한계를 스스로 극복하려는 어리석은 노력들이 여러 가지 모양으로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교만한 마음 때문에 한계를 내 힘과 내 능력으로 극복했다고 말합니다. 신명기 8장 14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신 8:14). 기독교 이론가이자 수도자였던 ‘에바그리오스’는 ‘교만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때로는 우리 힘, 우리 지혜, 우리 능력으로 살아가면서 하나님 이름,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살고 있다고 스스로를 속이는 교만에 빠지기도 합니다. 예레미야 49장 16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 마음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렘 49:16). 우리도 얼마든지 지금 나에게 부족한 것에만 집중하여 하나님이 주신 은혜들을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언제든 그런 교만이 우리 마음을 틈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한계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과학기술로 훌륭한 문명을 이룬다고 해도, 교만한 마음 하나 어찌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이 한계를 우리가 무엇으로 덮을 수 있겠습니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나의 한계를 덮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붙잡고 있음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때로는 너무 당연하게 여겨 은혜를 잊어버리고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겨, 기쁨과 즐거움마저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은혜를 잊어버리면 기쁨과 즐거움을 잃어버립니다. 그런 나의 교만을, 나의 한계를 하나님께 인정하고 가지고 나아가길 바랍니다. 그리고 다시 은혜로 나를 덮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기쁨과 즐거움이 회복될 것입니다. 기쁨과 즐거움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 신명기 8장 17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신 8:17).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오늘 하루도 ‘나의 힘, 나의 능력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힘, 하나님이 주신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늘도 은혜로 삽니다.’ 고백하며 보내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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