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조건
일시 : 2025년 9월 10일
본문 : 신명기 10:12-22
여러분, 행복의 조건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사람마다 대답은 다릅니다. 어떤 이는 돈, 어떤 이는 건강, 또 어떤 이는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박승일이라는 이름을 들어봤습니까? 그는 연세대학교 농구부 출신으로, 프로농구팀 대우 제우스에서 활약하던 유망한 농구선수였습니다. 하지만 2002년, 갑작스럽게 루게릭병(ALS) 진단을 받으면서 선수 생활을 접어야 했습니다. 전신이 서서히 마비되어 결국 호흡조차 기계에 의존해야 하는 병, 누구라도 절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그러나 그는 삶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승일희망재단’을 세워 같은 병을 앓는 환자들을 도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24년에 편안히 눈을 감았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단순한 불행의 기록이 아니라, 새로운 행복의 증언이 되었습니다. 그는 누워있었지만, 눈으로 글씨를 입력해서 글을 썼는데, 그렇게 타이거 JK와 함께 만든 노래 「행복의 조건」에는 이런 가사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남과 항상 비교하며 / 행복과 나는 별개인 것처럼 살며 / 불만은 늘 꼬리처럼 따라다녀 / 뭐 하나 제대로 된 만족 없는 삶이란 틀 / 어찌하겠나 이것이 다 / 살아가는 모든 이의 인생인 것을 /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행복의 조건 / 운전자에겐 탁 트인 도로가 행복 / 백수에겐 백수 탈출이 행복의 조건 / 직장인은 승진이 상인은 대박이 / 엄마에겐 자식 잘 됨이 행복의 조건 / 싱글은 사랑과 밍글하는 가슴 속 팅글거리는 // 난 행복의 뒤를 절대 쫓지 않아, / 행복은 나를 찾아 감싸안아” 세상은 여전히 행복을 조건으로 묻습니다. 돈, 건강, 사랑, 명예…. 하지만 박승일 씨의 삶은 우리에게 역설적으로 이렇게 묻습니다. “정말 그것들이 다 있어야 행복할 수 있는가?” 몸은 갇혔지만, 그는 ‘다른 이들을 돕는 일’ 속에서 행복을 말합니다. 즉, 행복은 외부 조건이 아니라, 누구와 연결되어 있느냐, 무엇에 매여 있느냐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죠.
성경도 동일하게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 신명기 10장 12–22절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라, 그것이 네 행복을 위한 것이다.” 세상이 말하는 행복의 조건은 끊임없이 변하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행복의 조건은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행하고, 사랑하고, 섬기고, 지키는 삶. 그것이 진짜 행복의 조건입니다.
1. 하나님께서 행복하신 조건
우리가 늘 이야기하고 말하는 행복이라는 것이, 평안하고, 문제없고, 아무런 고통 없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에서 행복은 히브리어로 ‘토브’를 썼습니다. 이 토브는 ‘좋다’, ‘좋은’, ‘good’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시고 창조하실 때 계속 이 토브가 쓰였습니다. 계속 좋은 것처럼 행복하신 거예요.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시고 행복을 계속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도 행복의 조건은 따로 있었습니다. 세상을 만드시고 창세기 1장 10절부터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보시기에 좋은 조건이 갖춰지고 하나님은 그것으로 행복해 하셨다는 겁니다. 여기에 사람을 창조하신 것만으로 심히 행복해 하신 게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 1:31b) 사람과 사람에제 주시려고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고 좋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행복은 철저하게 우리와 세상을 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인해 행복해하십니다. 사람은 유일하게 말로 창조되지 않은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관심과 손길과 숨결이 닿은 소중한 존재라는 겁니다.
2. 말씀에 매여야 행복합니다.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 여호와께서 오직 네 조상들을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그들의 후손인 너희를 만민 중에서 택하셨음이 오늘과 같으니라”(14-15절) 모세는 끊임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야기합니다. “너희의 정체성을 알아라. 네가 어디에 속해 있느냐. 만민 중에 너희를 특별히 택하신 분이 하나님 아니냐!” ‘하나님의 요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명령을 행하고, 서로 사랑하고, 섬기고, 지키는 것 이거야’라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것이 단순히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해서 하나님을 행복하게 해 드리자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서는 ‘너희를 위하여 행복하라.’는 겁니다. ‘네가 행복해지려면, 행복을 위해서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켜야 한다.’는 거예요.
행복은 규례나 명령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매이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매이는 것이지 서로에게서 벗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부부나 자녀들도 서로 매어 있을 때 행복을 느낍니다. 신앙인인 우리는 예수님께 매여야만, 하나님의 말씀 안에 매여야만 참 자유를 누린다는 겁니다.
미국의 광고 중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어는 ‘만족’입니다. 광고가 멋있게 나오고, 어떤 상품을 불문하고, 모든 광고의 마지막에는 대부분 ‘당신을 만족시켜 드립니다’라는 말이 나온다고 합니다. 이 뜻은 바꿔 말하면 현대의 사람들은 물건을 통해 만족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만족한다는 뜻은 본래 완전한 자기 충족을 의미했습니다. 스스로 마음 안에서 만들어지는 만족감이라는 겁니다. 즉 만족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외부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어 내면 안에서 온다는 뜻입니다.
성경에서는 물질이나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마음이 풍족한 사람을 ‘만족한 사람’, 혹은 ‘족한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신앙생활의 외부적인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예수님으로부터 만족하고 또 행복해야 합니다. 삶의 기쁨으로 만족함을 주시는 예수님이 마음속에 계신가요? 우리 역시 외부적인 축복에만 너무 몰두하고 신앙생활을 하진 않습니까?
3. 눈에 보이는 행복이 전부는 아닙니다.
신명기 27장 11절부터는 모세가 백성에게 명령하여 여섯 지파는 백성을 축복하기 위해 그리심 산에 서고 여섯 지파는 백성을 저주하기 위해서 에발산에 서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조금 특이한 지점을 발견합니다. 바로 축복이 아닌 저주에 ‘아멘’을 하라고 나옵니다. 우리는 너무나 익숙하게 축복에만 ‘아멘’을 합니다. 반면에 부모를 경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말에는 ‘아멘’을 하기가 꺼려집니다.
이 말은 우리가 잘되는 축복에만 매여 있다는 겁니다. 행복하기 위해 좋은 것들, 좋은 것과 편안하고 안락함 속에서만 행복을 누리길 원하고, 평탄한 신앙 속에서 축복받으며 살길 원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성경은 불편함 속에서, 예수께 매이고 율법과 규례를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경외함으로 행하고 사랑하고 섬기고, 지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머리 두실 곳조차 없었고, 제자들은 가난과 어려운 핍박 속에서도 복음에 매여 그 안에서 행복을 찾으려 애썼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참된 행복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행복함은 불편함을 벗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네 행복을 위하여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라’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행하고 사랑하고 섬기고 지키라는 겁니다.
주님의 도를 행하는 것은 결국 주님의 길을 걸어가는 행위라는 뜻입니다. 주님이 나의 길이 되어 주십니다. 본문에 ‘길’로 번역된 히브리어 ‘derek’은 ‘같이 걷다’라는 의미로 ‘수많은 사람들이 걸어가 밟혀 생긴 길’을 이야기합니다. 누군가와 함께 걷고 누군가와 함께 여행하며 걸었던 그런 길이었을 것입니다. 여행하면 좋은 것만 있는 게 아닙니다. 무엇을 만날지 모르는 두려움, 무서움 안에서 설렘과 새로움이 공존하며 마음에 엄청난 에너지를 줍니다.
여러분의 신앙이 하나님과 함께 두려움과 설렘으로 하는 행복한 여행이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 예수님과 함께 살아내는 우리의 삶이 우리의 유일한 행복의 조건입니다.
번호 | 제목 | 작성자 | 등록일 | 조회수 | 첨부 파일 |
---|---|---|---|---|---|
공지 | 설교문은 참고용 자료입니다. | 꿈미 | 2019-09-07 | 952 | |
3622 | 2025년 9월 22일 | 꿈미 | 2025-09-16 | 13 | |
3621 | 2025년 9월 21일 | 꿈미 | 2025-09-14 | 19 | |
3620 | 2025년 9월 20일 | 꿈미 | 2025-09-14 | 20 | |
3619 | 2025년 9월 19일 | 꿈미 | 2025-09-13 | 25 | |
3618 | 2025년 9월 18일 | 꿈미 | 2025-09-12 | 48 | |
3617 | 2025년 9월 17일 | 꿈미 | 2025-09-12 | 68 | |
3616 | 2025년 9월 16일 | 꿈미 | 2025-09-12 | 55 | |
3615 | 2025년 9월 15일 | 꿈미 | 2025-09-12 | 60 | |
3614 | 2025년 9월 14일 | 꿈미 | 2025-09-09 | 55 | |
3613 | 2025년 9월 13일 | 꿈미 | 2025-09-09 | 59 | |
3612 | 2025년 9월 12일 | 꿈미 | 2025-09-09 | 66 | |
3611 | 2025년 9월 11일 | 꿈미 | 2025-09-09 | 73 | |
3610 | 2025년 9월 10일 | 꿈미 | 2025-09-06 | 83 | |
3609 | 2025년 9월 9일 | 꿈미 | 2025-09-06 | 77 | |
3608 | 2025년 9월 8일 | 꿈미 | 2025-09-04 | 7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