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생각하옵소서
일시 : 2026년 4월 6일
본문 : 사사기 16:23-31
식당이나 마트 같은 공공장소에서 아이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닐 때가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며 쳐다볼 때, 사람들의 시선은 아이에게만 머물지 않습니다. 반드시 그 아이의 부모를 찾습니다. 그리고 ‘대체 부모가 누구길래 애를 저렇게 가르쳤나?’ 하고 속으로 혀를 차게 됩니다. 자녀의 행동과 태도가 곧 부모의 얼굴이자 인격으로 평가받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원리도 이와 같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바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를 통해서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자녀의 잘못된 삶이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의 얼굴에 얼마나 큰 먹칠을 했는지, 그러나 그 실패한 자녀가 다시 엎드릴 때 아버지는 어떻게 안아주시는지가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삼손의 마지막 모습을 통해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1.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참담한 조롱의 현장이 펼쳐집니다. 블레셋 방백들이 모여 자신들의 우상인 다곤에게 큰 제사를 지내며 “우리의 신이 우리 원수 삼손을 우리 손에 넘겨주었다”(23절)라고 크게 기뻐합니다. 블레셋 백성들 역시 두 눈이 뽑힌 채 끌려온 삼손을 보며, “우리의 땅을 망쳐놓고 우리의 많은 사람을 죽인 원수를 우리의 신이 우리 손에 넘겨주었다”(24절)라고 외칩니다. 그리고 그들은 마음이 한껏 들떠 감옥에 있던 삼손을 끌어냅니다. 이스라엘의 사사였던 삼손은 이제 이방인들을 위해 재주를 부리는 구경거리로 전락했고, 두 기둥 사이에 처참한 모습으로 세워집니다(25절).
여기서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삼손의 실패가 단순히 한 사람의 비극으로 끝나지 않고,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다곤 신보다 못한 존재로 취급하며 모욕하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점입니다. 성도가 세상과 타협하며 빛을 잃어버릴 때, 불신자들은 우리의 모습을 보고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오해하고 함부로 판단하게 됩니다. 나의 영적 게으름과 일탈이 창조주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에 흠집을 내는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입니다.
외교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통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나라를 향해 아무리 좋은 글을 써서 말해도 통역사가 제대로 통역해 주지 않으면, 전혀 다른 내용과 의도로 전달이 됩니다. “당신의 나라를 사랑해서, 가지 않으면 속상할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사랑하는데, 참 속상하다.”라고만 말해버린다면, 단어는 똑같이 들어갔는데 다른 의미가 전달될 것입니다. “좋겠다.”고 말했는데 “조~옿겠다.”라고 말하면 반대의 의미가 됩니다. 대변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의 역할을 “그리스도의 편지”(고후 3:3)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오늘 나의 삶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세상에 잘 대변하고 있습니까? 내 삶의 가장 가까운 자리, 즉 가족 관계와 친구 관계, 직장 동료 관계에서 나는 예수님의 성품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까? 삼손의 모습을 보며 우리가 무심코 던진 짜증 섞인 말 한마디, 이기적인 고집 하나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가림막이 될 수 있음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먼저 그리스도의 편지를 아름답게 전할 수 있길 바랍니다.
2. 회복의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맹인이 된 삼손은 자신을 붙들고 있는 소년에게 집을 버티고 있는 기둥에 자신을 데려달라고 부탁합니다(26절). 당시의 상황은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블레셋의 모든 지도자가 모였고, 지붕 위에서 삼손을 조롱하며 구경하는 사람만 무려 3천 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27절).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가장 어둡고 비참한 밑바닥에서, 삼손은 마침내 입을 열어 부르짖습니다.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갚게 하옵소서”(28절) 이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삼손은 신전을 지탱하는 두 기둥을 양손으로 껴안고(29절),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한다(30절)고 외치며 온 힘을 다해 몸을 굽힙니다. 그러자 신전이 무너져 내려 그곳에 있던 모든 방백과 백성을 덮쳤고, 삼손이 살았을 때 죽인 자보다 죽을 때 죽인 자가 더 많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결국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안이 내려와 그의 시신을 거두어 장사함으로, 삼손의 20년간의 사사 시대가 막을 내립니다(31절).
삼손의 마지막 외침은 하나님을 향한, 부서진 심령에서 터져 나온 뼈저린 회개였습니다. 그때 놀랍게도 하나님은 “다 네가 자초한 일이다”라며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가장 비참하게 망가진 그 순간에도, “나를 기억해 주세요!” 진실하게 엎드리는 영혼을 주님은 다시 붙들어 주셨습니다.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영광은 그의 철저한 회개를 통해 마지막 순간 다시 찬란하게 회복되었습니다. 회개의 순간, 하늘의 은혜가 새롭게 시작되는 통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의 속을 썩일 대로 썩이고 큰 사고를 쳐서 빚더미에 앉거나 감옥에 갈 위기에 처했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 손가락질하고 욕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자녀가 상처투성이의 모습으로 돌아와 부모의 무릎을 붙잡고 “어머니, 아버지, 제가 잘못 살았습니다. 저 좀 살려주세요.” 하고 통곡한다면, 어느 부모가 그 자녀를 차갑게 내치겠습니까? 사람들은 부모에게 ‘바보, 멍청이’라고 부를 수도 있고, ‘또 배신하고 떠나갈 것이다’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같이 부둥켜안고 울며 자신의 모든 것을 팔아서라도 자식을 다시 살려내려고 하는 것이 바로 부모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마음이 바로 이렇습니다.
지금 혹시 삼손처럼 인생의 가장 캄캄하고 낮은 자리에 홀로 서 있습니까? 나의 어리석음이나 고집 때문에 가정의 평화가 깨어지고, 경제적으로 무너지고, 관계가 단절된 깊은 수렁에 빠져 있습니까? 체면 때문에, 혹은 염치없다는 생각 때문에 하나님을 피하지 않길 바랍니다. 바로 지금이 “주여, 나를 생각해 주시옵소서.”라고 부르짖을 때입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상처 난 마음 그대로 아버지께 엎드리길 바랍니다. 진실하게 회개하며 돌이키는 자를 우리 하나님은 반드시 다시 안아주시고, 다시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모두 이 회복의 주님을 만나길 소망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삼손의 이 마지막 모습은 그저 교훈을 주는 하나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곧 두 팔을 벌려 기둥을 안고 죽음으로써 대적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구원한 삼손의 모습은, 훗날 갈보리 언덕에서 두 팔을 벌려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사탄의 권세를 깨뜨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정확히 예표합니다. 히 2:14-15은 예수님께서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삼손은 수치를 당한 불완전한 구원자였지만, 우리 예수님은 죄가 없으심에도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십자가의 수치와 조롱을 대신 당하신 온전한 구원자이십니다. 삼손의 죽음은 블레셋이라는 육적인 적을 일시적으로 물리쳤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죄와 사망이라는 영원한 적을 영원히 물리치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을 생각하며, 오늘 더욱 예수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 살아가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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