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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1일
2026-03-29 06:54:18
꿈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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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준 낮은 복수와 수준 높은 은혜

 

일시 : 202641

본문 : 사사기 15:1-20

 

하나님과 사람은 차원이 다릅니다. 차원이 다르다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다는 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사야 559절에서 하나님께서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다라고 분명하게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말씀해 주십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간격은 누구도, 무엇으로도 좁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차이는 역설적이게도 인간의 밑바닥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철저하게 연약함이 폭로되는 그 순간에 가장 분명하고 찬란하게 빛이 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 수준 차이를 아주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수준 낮은 삼손의 복수와 수준 높은 하나님의 은혜를 오늘 말씀을 통해 더욱 깊이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인간 주도의 모든 행위는 낮은 수준을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에서 삼손이 보여주는 행동의 동기는 이스라엘의 구원이나 하나님의 영광이 아닙니다. 오직 알량한 자존심과 불타는 복수심뿐입니다. 블레셋인 장인이 자신의 아내를 다른 사람에게 주어버렸다는 사실에 격분한 삼손은 여우 삼백 마리의 꼬리에 횃불을 달아 적들의 밭을 잿더미로 만듭니다. 그러자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의 아내와 장인을 불태워 죽이는 잔인한 보복을 가합니다. 이에 분노한 삼손은 7절에서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은즉 내가 너희에게 원수를 갚고야 말리라"라고 소리치며 그들을 완전히 도륙합니다. 이후 삼손을 잡으러 온 유다 지파 사람들에게 결박 당할 때에도 삼손은 11절에서 이렇게 항변합니다. "그들이 내게 행한 대로 나도 그들에게 행하였노라." 죄책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 중의 그 누구도 이 본문을 대할 때에 삼손이 참 멋있구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삶을 살았구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히려 처절할 정도로 수준 낮은 인간 삼손의 단면을 보게 될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타락한 인간의 수준입니다. 삼손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과 능력을 자신의 상처 난 감정을 해소하고 복수하는 데 철저히 사유화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는 나귀의 새 턱뼈라는 부정한 사체를 집어 들고 천 명을 때려죽인 뒤, 16절에서 "나귀의 턱뼈로 한 더미, 두 더미를 쌓았음이여 나귀의 턱뼈로 내가 천 명을 죽였도다"라며 스스로를 찬양하는 시를 짓기까지 합니다.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고, 오직 나의 분노, 나의 의지, 나의 힘만 남은 교만과 혈기가 절정에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직장에서, 가정에서, 심지어 교회 안에서 갈등이 생길 때, 우리는 삼손처럼 "그들이 내게 행한 대로 나도 똑같이 갚아주겠다"며 수준 낮은 인간의 의지를 불태우지는 않습니까?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마치 나실인 삼손이 만져서는 안 될 나귀의 턱뼈를 꽉 움켜쥐고 복수를 행했던 것처럼, 성도로서는 차마 할 수 없는 방법으로 복수하려 몸부림치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인간의 의지로 진행하는 복수와 혈기의 끝에는 결코 생명이 없습니다. 성도가 자신의 힘을 자랑하며 인간적인 다툼에 에너지를 쏟아부을 때, 그 결과는 결국 더 깊은 상처와 피곤함, 그리고 영적인 고갈뿐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수준 낮은 모습이 드러날 뿐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발견되는 수준 낮은 모습을 보며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이 새벽에 우리 마음 가운데 있는 수준 낮은 연약함을 주님 앞에 내려놓고 나아갈 수 있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하나님은 모든 상황을 뛰어넘어 수준 높은 은혜를 베푸십니다.

 

내 힘과 내 의지로 행했던 수준 낮은 복수극의 결말은 과연 무엇이었습니까? 본문 18절 상반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삼손이 심히 목이 말라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천 명을 때려눕히며 기고만장했던 천하장사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방금 전까지 자신의 힘을 과시하던 삼손은, 물 한 모금을 마시지 못하면 혀가 타들어가 죽을 수밖에 없는 극심한 '갈증' 앞에서 철저하게 무너져 내립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진짜 모습입니다. 아무리 대단한 능력을 휘두르며 자기를 자랑해도, 결국 인간은 물 한 모금과 같은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단 하루도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절대적으로 연약한 존재인 것입니다. 그 끔찍한 연약함과 죽음의 문턱에서 삼손은 비로소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찾습니다. 놀랍게도 이것이 사사기에 기록된 삼손의 첫 번째 기도였습니다. 여전히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받지 못한 자들의 손에 떨어지겠나이다"라며 투덜대는 어린아이 같은 기도였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압도적인 수준 차이가 폭발적으로 드러납니다.

만약 사람의 수준이었다면 어떻게 반응했겠습니까? 삼손이 지금 하나님께 사랑받을 만한 행위를 한 것이 없습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온전히 자기가 주도해 왔고, 자신의 정욕을 따라갔으며, 자신의 의지대로 복수했습니다. 그렇다면 "네 고집대로 복수하고, 네 힘으로 천 명을 죽였다고 자랑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나를 찾느냐? 물도 네 힘으로 구해 보아라!"라고 조롱하며 책망하는 것이 사람의 일반적인 반응일 것이고, 하나님 또한 그러셔야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짐승의 사체를 만진 나실인의 부정 또한 하나님께 징계받아도 할 말 없는 분명한 잘못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의 생각과 은혜의 수준은 인간의 좁은 마음과 완전히 다릅니다. 하나님은 삼손의 자격 없음을 따져 묻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연약함에 부딪혀 살려달라고 부르짖는 그 절박한 외침 하나만을 들으시고 즉각적으로 응답하셨습니다. 19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레히에서 한 우묵한 곳을 터뜨리시니 거기서 물이 솟아나오는지라." 하나님은 메마른 땅을 쪼개어 시원한 생수를 터뜨려 주셨습니다. 그곳의 이름이 바로 '엔학고레', '부르짖는 자의 샘'입니다. 하나님은 삼손의 인간적인 혈기와 복수마저도 덮어버리시는 상상할 수 없는 넓은 품으로 그를 안아주시고, 텅 빈 그의 영혼과 육신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어 주신 것입니다. 인간의 지독한 연약함과 실패가 폭로된 바로 그 밑바닥에서, 차원이 다른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긍휼과 은혜가 가장 눈부시게 터져 나온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때때로 우리는 내 뜻과 내 의지대로 인생을 이끌어가려다 사방이 가로막힌 한계 상황에 직면합니다. 내 힘으로 이룬 줄 알았던 것들이 다 부질없게 느껴지고,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혀가 타들어 가는 극심한 목마름에 쓰러질 때가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바로 내 손에 꽉 쥐고 있던 나귀의 턱뼈, 즉 내 의지, 내 자랑, 내 복수심 같은 것들을 내려놓고, 하늘을 향해 부르짖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자격 없음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은혜는 내가 강할 때가 아니라, 내가 철저히 무력함을 깨닫고 엎드릴 때 주어집니다. 나의 얄팍한 수준을 내려놓고 크신 하나님께 부르짖기만 하면, 우리 주님은 결코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십자가의 보혈로 쩍쩍 갈라진 우리의 메마른 심령에 엔학고레의 생수를 흠뻑 터뜨려 주실 줄 믿습니다. 새벽을 깨워 나온 이 자리에서 우리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우리의 삶에 생수가 솟아나게 될 줄 믿습니다.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오늘 우리는 사사기 15장을 통해, 수준 낮은 인간의 복수와 차원이 다른 하나님의 위대한 은혜를 극명하게 대비해 보았습니다. 삼손처럼 자신의 의지를 따라 나귀의 턱뼈를 휘두르는 수준 낮은 인간의 의지와 복수심을 십자가 앞에 모두 내려놓아야 합니다. 수준 낮은 우리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는 차원이 다르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 은혜의 생수가 터지게 하실 것입니다. 오늘 하루가 우리 손에 있는 나귀 턱뼈를 내려놓고 우리의 연약함을 솔직하게 주님께 토로하며 부르짖는 하루, 그 가운데 세상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하나님의 차원이 다른, 수준 높은 은혜를 경험하는 복된 하루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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