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이야기
일시 : 2026년 2월 7일
본문 : 여호수아 15:20-63
우리는 영화를 보거나 드라마를 볼 때, 모든 게 다 설명되고 깔끔하게 끝나는 이야기보다 오히려 끝나고 나서도 마음에 남는 이야기를 오래 기억합니다. 주인공의 삶이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고, 몇 장면은 설명되지 않은 채 남아 있고, 이후 어떻게 되었을지 자꾸 생각나게 만드는 그런 이야기 말이죠. 이런 이야기를 보고 나면,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것 같은 모호한 기분이 남습니다. 분명 마지막 화까지 다 종영이 되었는데, 우리의 상상 속에 이야기는 끝나지를 않는 것이죠.
오늘 말씀은 마치 이처럼 이야기가 다 끝났으나 끝나지 않은 것 같고 그 이후를 생각하게 만드는 말씀입니다. 오늘 읽은 여호수아 15장은 유다 지파가 가나안 땅을 받는 장면의 마지막 부분을 보여 줍니다. 유다 지파가 하나님께 받은 성읍들이 쭉 나열되는데요. 마치 영화 한 편이 끝나듯 이야기가 마무리되며 마지막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듯한 장면인 것이죠. 엔딩 크레디트가 나왔다는 것은 이야기가 다 끝난 것입니다. 올라오는 크레디트를 끝까지는 보는 사람도 아마 거의 없을 겁니다.
그런데 그 엔딩 크레디트 마지막에 의미심장한 한 문장을 보게 되는데요. 본문인 여호수아 15장 63절 말씀입니다. “예루살렘 주민 여부스 족속을 유다 자손이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족속이 오늘까지 유다 자손과 함께 예루살렘에 거주하니라”(63절).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왠지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될 것 같은 암시를 남기고 마무리됩니다. 실제로 유다 정복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습니다. 이 마지막 한 문장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울고 웃는 새로운 이야기들이 이어집니다. 여기서 마무리될 수도 있었던 이 이야기는 왜 계속 이어져야만 했을까요? 오늘 말씀 안에서 우리는 이 이야기가 끝나지 않은 이유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은혜를 함께 발견하길 원합니다.
1. 우리가 책임져야 할 문제 때문에
먼저, 오늘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은 첫 번째 이유는 ‘우리가 책임져야 할 문제 때문’입니다. 여호수아 15장은 분명히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장면입니다. 유다 지파는 제비를 뽑아 땅을 받았고, 그 땅은 막연한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자세히 보면 아주 구체적인 성읍들의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죠. 성경이 이렇게 길게 성읍 이름을 나열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이 하신 일이 관념이나 상징이 아니라 실제 역사였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죠. 하나님은 ‘대충 이쯤’의 땅을 주신 분이 아니라, 어디까지가 너희의 기업인지를 분명히 정해 주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이 목록은 지루한 명단이 아니라 약속의 실체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분명하고 구체적인 성취의 기록이 끝나는 마지막에, 성경은 의도적으로 불편한 한 문장을 덧붙입니다. “예루살렘 주민 여부스 족속을 유다 자손이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라는 말씀입니다. 이 문장은 전체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훈훈한 유다 지파의 땅 결산 이야기에서 이 문장은 마치 잘못 찍은 오점처럼 남습니다. 그들이 범한 오류, 그들의 실수, 그들의 실패가 고스란히 담깁니다. 성경은 여기서 실패를 숨기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실패의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이 약속을 어기셨다는 말도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했다는 말도 아닙니다. 성경이 뭐라고 말씀합니까? ‘유다 자손이’ 쫓아내지 못했다고 말씀합니다. 남은 족속을 쫓아내지 못한 것은 하나님의 책임이 아니라, 유다 자손들의 책임이었던 것이죠.
그러면 하나님이 사람을 탓하시고 정죄하시려 한 걸까요? 그렇게 볼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책임의 자리로 우리를 부르시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친히 약속대로 우리에게 땅을 주셨지만, 그 주어진 약속을 끝까지 살아내는 일은 우리의 몫으로 남기셨습니다. 가나안 정복은 단번에 끝나는 사건이 아니라 지속적인 순종의 여정이었습니다. 한 번의 승리로 모든 문제가 자동으로 해결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여기서 멈출 수 없습니다. 아직 우리가 감당해야 할 선택과 결단의 자리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이 본문을 과거 유다 지파의 이야기로만 읽을 수는 없습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의 모습 역시 이와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았고 구원의 약속을 들었으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영역들이 남아 있습니다. 신앙은 있지만 여전히 붙잡고 있는 두려움이 있고, 말씀은 알고 있지만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습관이 있으며, 믿음은 고백하지만, 아직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지 못한 영역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삶에 남아 있는 여부스 족속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이야기를 미완성처럼 남겨 두십니다.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신앙이 있는 성도가 현실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보여주시기 위해 남은 이야기를 안겨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주신 이야기가 끝나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의 계획이 덜 완성되어서가 아니라 인간의 순종이 여전히 진행 중이기 때문인 줄 믿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그 남은 이야기를 멋있게 마무리해 가길 소망합니다.
2. 우리를 책임지시기 위해
둘째로, 오늘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은 이유는 ‘우리를 책임지시기 위함’입니다. 앞서 우리는 이야기가 끝나지 않은 이유를 우리의 책임에서 찾았습니다. 물론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본문이 인간의 책임만을 강조하는 말씀이라면 우리는 이 장을 읽으며 큰 부담만 느끼게 될 것입니다. ‘결국 또 실패했다’는 좌절로 끝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끝내지 않습니다. 63절의 마지막 표현은 실패를 기록한 문장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인내를 드러내는 문장입니다. “여부스 족속이 오늘까지 유다 자손과 함께 예루살렘에 거주하니라”라는 말씀은 문제가 하루 이틀의 실수가 아니라 오랜 시간 지속되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 시간 동안 유다 지파를 버리지 않으셨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한 순종을 조건으로 내세우고 우리와 동행해 주시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설령 온전히 순종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불완전한 순종 속에서도 관계를 끊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유다 지파에 남은 이 미완성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무능이 아니라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경 전체의 흐름 속에서 보면 예루살렘 정복 스토리는 여기서 마무리되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 다윗의 시대에 이르러서야 예루살렘은 완전히 정복되고 하나님의 도성이라 여겨집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은 세대를 넘어 이어집니다. 남은 이야기가 있다 하더라도 변함없이 하나님의 계획을 이어가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의 불완전함이 하나님의 내일을 막지 못하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미완성 위에 하나님의 완성을 더해 가십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여전히 손을 떼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땅을 나눠주시는 분일 뿐 아니라 그 땅 위에서 살아가는 시간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책임지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흔들리고, 미루고, 넘어지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여기서 끝이다”라고 선언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그렇기에 이 미완성처럼 보이는 결말은 실패의 낙인이 아니라 ‘은혜의 여백’인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 속에 끝나지 않는 문제로 버거운 성도가 있습니까? 이제 좀 마무리 되었으면 하는 커다란 구멍이 우리의 인생에 자라집고 있습니까? 그 비어 있는 듯한 이야기는 곧 하나님이 개입하시고, 일하시며, 이끌어 가실 하나님의 공간인 줄 믿습니다. 우리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은 이유는 우리가 아직 부족해서이기도 하지만, 더 깊은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책임지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 우리는 끝났으나 끝나지 않은 것 같은 유다 지파의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유다 지파에게 땅을 주셨고, 그 기업은 성읍의 이름으로 구체적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의 마지막에는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한 장면이 남아 있었습니다. 여부스 족속이 예루살렘에 함께 거주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이 실패했다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야기가 아직 진행 중이라는 선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도 이와 같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있고, 이미 주어진 약속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와 정리되지 않은 영역이 남아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상태를 실패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미완성의 자리에서도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고, 그 자리에서 여전히 일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모습만으로 스스로를 판단하지 마십시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계십니다. 멈추지 말고 그 이야기 안에 머무르십시오. 정리되지 않은 현실 앞에서 도망치지 말고,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사실을 붙드십시오. 완성되지 않았다고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이 여전히 일하신다는 믿음으로 오늘을 살아가십시오. 시간이 지나 우리의 삶을 돌아볼 때, 우리는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끝난 줄 알았던 자리에서 하나님은 새로운 장을 시작하셨다고, 멈춘 것처럼 보였던 그 지점에서 하나님은 끝까지 우리를 이끌어 오셨다고 말입니다. 바라기는 오늘 이 예배의 자리가, 아직 끝나지 않은 하나님의 이야기 안으로 다시 걸어 들어가는 출발점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모두 하나님이 끝까지 책임지시는 그 이야기 속에서, 믿음으로 오늘을 살아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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