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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9일
2026-01-23 09:13:16
꿈미
조회수   92

놀라운 은혜를 찬양하라

 

일시 : 2026129

본문 : 여호수아 12:7-24

 

오늘 함께 읽은 본문 말씀은 얼핏 보면 단순한 지명과 왕들의 이름의 나열로만 읽기 쉽습니다. 실제로 오늘 본문은 여리고 왕 하나, 아이 왕 하나, 예루살렘 왕 하나...”처럼 왕들과 그들이 차지하고 있던 가나안의 세부 지명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이처럼 무의미해 보이고 지루해 보일 수 있는 목록을 길게 남긴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잊지 않게 하시고자 함입니다.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하나님의 은혜마저도 당연하게 여기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은혜로 지나온 길을 자신의 능력 덕분이라고 생각하는 유혹에 쉽게 빠지곤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언약 공동체인 이스라엘로 하여금 기억하기를 명하십니다. 그런데 그 기억은 몇 세대 전에 끝나 더 이상 오늘날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차디찬 기억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다음 세대가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토대가 됩니다. 이처럼 오늘 본문 말씀은 전쟁의 기록지가 아닌, 하나님께서 그 땅을 주셨다는 고백을 되새기게 하는 은혜의 증언이 됩니다.

특히 본문은 세대라는 관점에서 볼 때 더욱 그 의미가 깊어집니다. 그 대단했던 모세의 시대에 요단 동편에서 멸한 왕은 고작 둘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 시대에 요단 서편에서 멸한 왕은 자그마치 서른한 명입니다. 숫자를 자랑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불과 한 세대 만에 더 넓은 믿음과 은혜의 지경을 열어주셨다는 표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에게 변함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볼 것을 권면합니다.

 

1. 어제의 은혜는 오늘의 찬양이 됩니다

 

여호수아 12장은 두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앞부분은 모세가 요단 동편에서 정복한 두 왕을 언급하고, 7절부터는 여호수아가 요단 서편에서 정복한 왕들의 목록을 나열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저자가 왕들과 지역들의 이름을 나열하는 방식은 단지 전쟁의 성과를 나열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적인 노력에 힘입은 인간적인 성취를 자랑하는 것도 아닙니다. 은혜의 언덕 위에 서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바라보며 잠잠히 기억하게 하는 방식인 것입니다. 본문에 소개되는 각 왕의 이름은 단지 과거의 적을 가리키는 표지가 아닙니다. 이는 오늘 그리고 내일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인도하시고 지키시며 마침내 약속을 이루실 것을 선언하시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더욱이 이 목록이 주는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가나안은 큰 제국 하나를 무너뜨리는 구조가 아니라, 성읍마다 왕이 있는 도시국가들의 연합과 맞서는 구조였습니다. 각 성읍은 성벽과 방어체계를 갖추고 있었고, 당시 앞선 전쟁 기술과 철기 문명에 이른 가나안 지역의 무기 체계도 결코 만만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본문에 소개되는 서른한 명의 왕들은 단순히 서른한 개의 이름이 아니라, 목숨과 민족 전체의 운명을 건 서른한 번의 전투, 서른한 번의 염려, 서른한 번의 두려움과 맞닿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모든 과정을 통과하게 하셨고, 결국 왕들의 이름은 패배의 이름으로 기록됩니다. 성경은 이것을 통해 이스라엘의 승리는 그들이 강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에 신실하셔서라고 고백하도록 인도합니다.

이 지점에서 신앙의 중요한 원리가 드러납니다. 우리 가운데 종종 찬양이 메말라버리는 이유는 나를 둘러싼 환경이 더 어려워져서가 아니라, 단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에게 필요한 삶의 태도는 일상에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은혜는 그것을 더욱 자주 곱씹고 되새김질하면 할수록 메마르고 목마른 우리의 영혼을 살찌우며 해갈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인생에서 마주하는 크고 극적인 사건만이 아니라, 오늘도 버텨내게 하신 하루, 끝까지 견디게 하신 한 주 등 삶의 매 순간을 은혜로 해석하는 눈이 회복될 때 찬양은 다시 살아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세상 한복판에서 크게 영광을 받으십니다.

수많은 시편이 반복해서 기억하라고 외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기억은 믿음을 살리고, 믿음은 찬양으로 이어집니다. 이처럼 오늘 본문이 목록이라는 형태로 주어졌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에게 은혜의 기억을 상기하게 하시는 놀라운 방식임을 깨닫게 됩니다.

 

2. 하나님이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모세가 정복한 왕이 두 명이었다면, 여호수아가 정복한 왕은 서른한 명입니다. 여기에는 분명한 의미가 있습니다. 전쟁의 규모가 커졌고, 전투의 횟수도 늘었습니다. 모세의 시대에도 전쟁은 두려운 일이었지만, 여호수아의 시대에는 더 복잡하고 더 험난한 싸움이 연속적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서 성경은 핵심을 선포합니다. 모든 싸움을 전쟁에 능하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정복은 여호수아 개인의 탁월함으로만 설명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여호수아서 전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싸우셨다는 관점으로 읽어야 합니다. 여리고의 성벽이 무너진 것도, 아이 성 전투가 회복된 것도, 기브온 전투의 역사도 결국에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하나님이 주셨다는 언약의 성취입니다. 실제로 오늘 본문에 나열되는 족속들의 이름은 수백 년 전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에 등장하는 바로 그 이름들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 12장의 결론은 약속에 성실하신 하나님이 승리하게 하셨다입니다.

이 고백은 오늘 우리들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현실의 전쟁은 과거와는 판이 다른 형태로 다가옵니다. 각 사람의 삶에는 영적인 전쟁이 있고, 관계의 전쟁이 있고, 책임과 두려움의 전쟁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시기에는 전쟁이 한두 번으로 끝나지 않고, 마치 서른한 명의 왕처럼 연속적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단순히 내 의지와 결단을 강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승리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히 하는 믿음이 요구됩니다. 승리는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신다는 시선이 회복될 때, 성도는 현실을 과소평가하지 않으면서도 두려움에 지배당하지 않습니다. 싸움의 크기를 부정하지 않되, 하나님이 더 크심을 고백하는 지경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과거의 먼지에 묻혀 계신 분이 아닙니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전쟁에 임하시는 분이시며, 우리로 하여금 약속의 언덕 위에 서게 하사 새로운 은혜의 지경을 바라보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문제를 만나든지 약속에 성실하신 하나님께 모든 시선을 내어드림으로, 오늘도 변함없이 나를 위해 싸우시는 하나님의 능하신 손을 바라보고 경험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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