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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4일
2026-05-02 06:55:31
꿈미
조회수   18

인생의 무게 중심, 어디에 두고 있는가

 

일시 : 202654

본문 : 사무엘상 2:12-36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대조적인 두 종류의 인생 배가 등장합니다. 제사장이라는 화려한 겉모습을 가졌으나 자기 욕망에 닻을 내린 엘리의 아들들, 그리고 작고 미약한 아이에 불과했지만 하나님께 견고히 닻을 내린 사무엘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과연 우리 인생은 어디에 닻을 내리고 있는지, 우리 인생의 무게 중심은 과연 어디에 있는지를 점검해 볼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1. 익숙함 때문에 경외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12절은 엘리의 아들들을 향해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라고 충격적인 진단을 내립니다. 여기서 알다는 히브리어로 야다인데, 단순히 지식으로 아는 걸 넘어 인격적인 교제와 경험적인 순종을 포함하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엘리의 아들들이 율법과 말씀을 몰랐던 게 아닙니다. 제사법의 매뉴얼을 몰랐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누구보다 제사에 정통했지만, 제사의 대상이신 하나님과 아무런 인격적인 관계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13절부터 성경이 소개하는 파렴치한 행각으로 드러납니다. 레위기 율법에 보면 제사장의 몫으로 제물의 가슴과 뒷다리를 정해두었지만, 그들은 세 살 갈고리를 찔러 넣어서 걸려 나오는 것이면 무엇이든 자기 것으로 삼았습니다. 심지어 15절에 보면 하나님의 몫이라고 할 수 있는 기름을 태우기도 전에 날 것의 고기까지 강요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드려야 할 최고의 가치인 화목제의 본질을 훼손하는 행동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주권, 그분의 통치권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던 것입니다.

엘리의 아들들이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분명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성소의 문지방을 넘나들며 자랐습니다. 제사 드리는 모습, 제물 타는 냄새와 피 냄새에 익숙해진 이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성소는 더 이상 거룩한 임재의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에게 성소는 매일 반복되는 익숙한 일터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들은 기계적인 종교 기술자가 되어 버린 겁니다.

매우 영적이고 거룩한 일이라고 할지라도, 우리가 주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익숙함이라는 독을 마시면 결국 경외를 잊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익숙함 때문에 하나님의 보좌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보다 눈앞의 고기 냄새에 더 민감해진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 예배는 단지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우리 안에 익숙함이 만들어내는 종교적 내성이 과연 내게는 없는지 점검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병이 깊어지면 약이 더 이상 듣지 않는 것처럼, 우리 안에 종교적 내성이 생기면 두려움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마다 새로운 떨림이 있어야 합니다. 늘 해 오던 거니까,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도 엘리의 아들들처럼 세 살 갈고리로 찌르고, 날고기를 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 주님을 예배할 때 우리 안에 거룩한 긴장감이 다시 회복되고 살아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안에 익숙함 때문에 무너진, 거룩을 가장한 탐욕은 없는지 자신을 살피며 다시 경외함으로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2. 사람의 눈치보다 하나님의 시선을 더 의식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2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내 처소에서 명령한 내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이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너희들을 살지게 하느냐하나님은 지금 엘리에게 비수 같은 말씀을 던지시는 거예요.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하나님의 평가입니다. 여기서 중히 여긴다는 말은, 히브리어로는 카바드’, 무겁다는 뜻입니다. 성경의 관점에서 영광이라는 단어는 다른 말로 무게감이라는 뜻입니다.

지금 엘리의 인생 저울이 심각하게 고장 난 것입니다. 저울의 한쪽 접시에는 살아계신 하나님, 다른 한쪽 접시에는 자기 아들들이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엘리의 저울이 어느 쪽으로 무겁게 기울었다는 말입니까? 자신의 두 아들 쪽으로 저울이 꺾여버렸다는 겁니다. 그는 아들들이 성소에서 음행을 하고 제물을 훔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엘리는 하나님께 매 맞을 일을 두려워하기보다 아들들의 마음이 상할까 봐, 혹은 제사장 가문이라고 하는 자신의 위신과 체면에 손상이 갈까 봐 미온적인 훈계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영적 태만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의 배경도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 사사시대입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시대 속에 성경은 의도적으로 장면을 전환해서 어린 사무엘을 비추고 있습니다. 21절입니다.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 26절입니다.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지금 사무엘이 자라고 있는 곳은 거룩한 성소였지만, 동시에 가장 타락한 어둠의 현장이었습니다. 그는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이 도둑질하고 음행하는 일을 매일 보며 자랐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어때요? 그런 죄악과 어둠의 환경에 전염되지 않았습니다. 그 비결은 그가 엘리 앞에 서 있었던 것이 아니라 여호와 앞에머물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1절 본문에 보면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타락한 지도자들의 눈치를 보며 그들의 악행을 배우는 대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며 자신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인생의 무게 중심을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둔 것입니다. 인생의 무게 중심이 하나님께 가 있는 사람만이 환경을 이기고 성장의 길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의 인생 저울은 과연 어디로 기울어져 있습니까? 어디에 내 인생의 무게 중심이 가 있느냐는 말입니다. 우리 인생의 유일한 안전지대는 코람데오, 오직 여호와 앞인 줄로 믿습니다.

오늘 엘리 가문의 비극은 자녀를 사랑한 일에 있지 않습니다. 자녀를 하나님보다 더 무겁게 여긴 데에 있습니다. 오늘날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자녀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일을 진정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자녀의 세상적인 실력과 평판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자녀를 하나님보다 앞세우는 일은 자녀 사랑이 아니라, 자녀와 나를 함께 재앙과 파멸로 몰아넣는 길임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사무엘은 사사시대의 무너진 중앙, 성소 한복판에 있습니다. 하지만 사무엘은 시대를 탓하지 않습니다. 불행한 환경을 탓하며 엇나가지 않았다는 거예요. 오늘 우리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환경과 상황이 어둡기 때문에 오히려 더 빛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세상이 타락했다고, 교회가 변질되었다고 비판만 하고 있지 않길 바랍니다. 사무엘처럼 하나님 앞에 머무는 연습을 지속하길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서 있음으로 사람의 평판보다 하나님의 시선을 더 의식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 저울에 하나님을 더 무겁게 대접할 때, 하나님은 내가 처한 환경을 뚫고 우리 삶에 은총을 더해 주실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시선을 가장 크게 의식하고, 하나님을 가장 무겁게 대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는 한 성소 안에서 공존했던 대조되는 두 인생을 보았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제사장이라는 직분을 가졌지만, 하나님을 가볍게 여겼습니다. 그 결과 인생 전체가 경멸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어린 사무엘은 죄악의 상황과 어두운 환경에 휩쓸리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하나님이 가장 무거운 존재였고, 그의 인생 무게 중심은 하나님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30절은 우리 인생을 관통하는 영적인 법칙과도 같습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하나님을 우리 인생의 가장 귀한 자리에 모실 때, 온 우주의 주권자이신 그분이 우리를 존귀한 자로 대접해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도 선택해야 합니다. 익숙함 때문에 그분을 가볍게 여길 것인지, 날마다 경외함으로 그분을 가장 무겁게 여길 것인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인생 저울에서 자녀보다, 물질보다, 하나님이 더 무거워지도록 만들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가장 무겁게 대접하는 자를 가장 영광스럽게 높여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번 한 주간, 저와 여러분의 모든 삶의 현장이 하나님의 시선을 더욱 의식하며 그분을 존중히 여기는 거룩한 성소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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