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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4일
2026-04-21 19:24:20
꿈미
조회수   82

울타리 안은 언제나 옳다

 

일시 : 2026424

본문 : 룻기 2:8-16

 

룻은 낯선 땅 베들레헴에서 생계를 위해 막막함을 뚫고 이삭을 줍기 위해 나섰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섭리는 그녀의 발걸음을 유력한 자 보아스의 밭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밭 주인 보아스가 이방 여인이자 과부인 룻에게 파격적인 호의를 베푸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룻이 살아가던 시대는 영적인 기준이 무너져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 무법한 시대, 사사 시대였습니다. 더욱이 모압 출신의 과부였던 룻은 당시 사회에서 어떠한 법적 보호도 받을 수 없는, 울타리 밖으로 내몰린 철저한 약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녀에 하나님은 세상의 삭막함이 아니라 그 위협을 막아주는 울타리를 제공하십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우연히 당도한 보아스의 밭, 그 밭은 그녀에게 단순한 일터를 넘어, 생명과 존엄을 지켜주는 견고한 은혜의 울타리였습니다.

하나님은 왜 룻에게 이런 울타리를 제공하신 걸까요? 오늘 본문을 보면 보아스는 다른 밭으로 가지 말 것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을 것을 거듭 강조해서 지시합니다. 하나님은 또 왜 이러한 것들을 강조하고 계신 걸까요? 이 시간 말씀을 통해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을 찾고, 우리 인생을 두르고 계시는 하나님의 견고한 울타리를 발견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울타리 안은 절대적 안전이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울타리를 제공하시는 이유, 그 첫 번째는 울타리 안은 절대적 안전이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본문 8절에서 보아스는 룻에게 이런 명령을 합니다.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8). 그리고 9절에서는 소년들에게 "너를 건드리지 말라"(9)라고 명령해 두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왜 이렇게 말했을까요? 보아스의 말을 통해 생각해 본다면 사사 시대라는 험악한 세상 속에서 젊은 이방 과부가 남의 밭을 이리저리 떠도는 것은 너무나 위험천만한 일이었습니다. 보아스는 이런 룻의 상황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이에 자신의 권위와 이름으로 룻이 당할지도 모르는 성적, 언어적 폭력으로부터 완벽히 보호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안전만 보장되었던 걸까요? 보아스가 쳐준 울타리 안에는 보호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9절 하반절을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이 길어 온 것을 마실지니라 하는지라"(9b). 고대 팔레스타인의 뙤약볕 아래서 일할 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타는 듯한 갈증입니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물은 매우 귀했고, 종들이 수고하여 길어온 물을 외인인 룻이 마음대로 마신다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었습니다. 만약 룻이 보아스의 울타리 밖으로 나갔다면, 그녀는 우물가에서 멸시를 당하거나 스스로 고된 노동을 통해 물을 구해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보아스의 울타리 안에서는 이미 누군가가 수고하여 길어놓은 생수를 거저 마시는 은혜가 주어졌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의 유혹과 사탄의 영적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교회라는 은혜의 울타리를 치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두고 미련하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왜 주일마다 교회를 가냐, 시간을 허비하고 있냐,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교회라는 울타리는 우리를 보호하고,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을 먹이는 곳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룻이 그릇에 담긴 물을 마음껏 마셨듯, 예배와 기도의 자리에서 성령님이 부어주시는 은혜를 거저 마십니다. 신앙 공동체 안에서 많은 지체들과 함께하므로 하나님의 강력한 보호를 받습니다. 바라기는 모든 성도가 그 어떤 악한 것으로부터 우리를 건드리지 못하도록 지키시는 주님의 보호하심을 신뢰하며, 구원의 울타리 안에 끝까지 머물길 축복합니다.

 

2. 울타리 안에는 하나님의 참된 위로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울타리를 제공하시는 이유, 두 번째는 울타리 안에는 하나님의 참된 위로가 있기 때문입니다. 보아스의 압도적인 호의 앞에 룻은 땅에 엎드려 이렇게 질문합니다.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10). 보아스는 룻의 겸손한 고백 앞에 이런 위로의 말을 건넵니다.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11-12). 그는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행한 모든 헌신을 칭찬하며 축복합니다. 특별히 그의 축복의 말 가운데 하나님의 날개로 번역된 히브리어 '카나프(כָּנָף)'는 새의 날개를 뜻하기도 하지만, 언약 백성을 보호하는 권위자의 옷자락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보아스는 룻이 고향 모압을 떠나 베들레헴으로 온 것이 단순한 효심이 아니라, 모압의 우상인 그모스를 버리고 참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피신해 온 위대한 신앙적 결단이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해 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인간이 행한 작은 헤세드를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룻이 시어머니에게 베푼 사랑을 보시고, 보아스라는 거대한 울타리를 통해 당신의 무한하신 헤세드, 사랑을 룻에게 갚아주고 계십니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온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이것은 내가 가진 세상의 가치관과 의지하던 우상들을 완전히 버리고, 오직 여호와의 날개 아래로 나의 생명을 온전히 피신시키는 영적 망명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자신의 비천함을 고백하며 십자가의 날개 아래로 엎드리는 자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도리어 가장 크고 온전한 상급으로 갚아 주십니다. 바라기는 그런 주님의 날개 아래에서 참된 안식과 평안을 누리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울타리 안에는 배불리 먹이는 풍성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울타리 안이 언제나 옳은 이유, 마지막 세 번째는 울타리 안에는 배불리 먹이는 풍성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식사 때가 되어 보아스는 멀리 있던 룻을 가까이 불러 자신의 식탁으로 초청합니다. 그리곤 떡을 초에 찍어 먹게 하고, 볶은 곡식을 배불리 먹게 하죠. 그의 이런 행동은 고대 사회에서 동등한 언약적 관계를 맺는 것, 즉 공동체로 수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치 신분 제도의 벽이 허물어지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울타리 안의 풍성함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15절과 16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보아스가 자기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그에게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고 책망하지 말며 또 그를 위하여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에게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 하니라“(15-16) 레위기 19장의 이삭줍기 율법은 가난한 자들을 위해 추수하다가 '자연스럽게 땅에 떨어진 것'만 주우라고 명시한 율법의 최소치였습니다. 그러나 보아스는 의도적으로 알곡 다발에서 곡식을 빼내어 그녀의 발 앞에 버려두는 자비를 베풉니다. 다시 말해 보아스는 율법의 의무를 넘어 자발적으로 풍성하게 그녀를 채웠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울타리 안에는 풍성함이 있습니다. 율법을 뛰어넘는 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울타리 안에만 있다면 이 풍성함은 우리의 삶을 가득 채웁니다. 우리의 능력이나 노력 때문이 아니라, 오직 울타리 안에 머물렀다는 이유 그 하나만으로 베푸시는 주권적인 호의입니다. 바라기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삶을 내어드림으로 주님의 울타리 안에서 예비된 채우심의 은혜를 풍성히 누리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사사 시대의 위협 속에서 룻에게 제공된 보아스의 밭은 생명을 구원하는 견고한 울타리였습니다. 그 울타리 안에서는 절대적 안전이 보장되었고, 하나님의 참된 위로가 있었습니다. 또한 배불리 먹이는 풍성함이 있었습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울타리 안에 거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울타리 밖의 세상이 아무리 자유롭고 화려해 보여도, 그곳은 영혼을 갉아먹는 기근의 땅입니다. 오직 은혜와 보호와 생수가 넘치는 주님의 울타리 안이 언제나 옳습니다. 어떠한 고난이 와도 교회를 떠나지 말고, 진리의 말씀이라는 울타리 안에 끝까지 머물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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