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신 하나님의 뜻대로
일시 : 2026년 4월 18일
본문 : 사사기 21:8-15
살다 보면 작은 문제 하나를 해결해 보겠다고 성급하게 손댔다가, 오히려 더 큰 문제를 만들어 낭패를 보는 일이 때때로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는 마음은 분명히 있었는데, 지나고 보면 그때 조금만 더 멈추어 생각했더라면, 조금만 더 신중했더라면, 조금만 더 지혜롭게 판단했더라면 좋았겠다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열심이 없어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열심은 있는데 분별을 제대로 하지 못해 문제가 더 커지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 그들은 공동체의 위기를 해결하려는 열심은 있었습니다. 베냐민 지파가 사라지지 않게 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모든 것을 통치하시는, 왕이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는 분별하지 않고 자기들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가다 보니,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죄를 더하고 혼란을 더 키우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분명한 교훈을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자기 소견이 아니라 왕이신 하나님의 뜻대로 분별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분별없는 선택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안타까운 자리에 서게 되기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이 왕이신 하나님의 뜻대로 분별하지 못한 이스라엘의 모습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분별없는 열심은 문제를 더 크게 만든다.
오늘 본문 8절과 9절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은 총회에 올라오지 아니한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찾습니다. 그리고 조사해 보니 야베스 길르앗 주민이 그 총회에 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당시 그 총회는 단순한 행정 모임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 함께 모여 중요한 사안을 결정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러므로 거기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은 단순한 불참이 아니라, 언약 공동체의 부름과 책임에 응하지 않은 일로 여겨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이스라엘은 그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곧바로 야베스 길르앗을 향해 칼을 들 준비를 합니다. 다시 말해 이들은 지금 매우 심각한 위기 앞에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희생양을 찾고 있었고 그 명분으로 야베스 길르앗의 총회 불참 사건을 다루려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이들에게는 하나님께 엎드려 뜻을 구하는 모습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이미 자기들이 정해 놓은 방향대로, 마치 명분이 있으니 그래도 된다는 식으로 상황을 몰아가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분명히 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좀 과격했다, 좀 성급했다 정도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의 원리를 벗어난 불의한 행동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죄를 다루실 때에도 분별과 공의를 요구하셨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24장 16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버지는 그 자식들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버지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니 각 사람은 자기 죄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 아멘! 이 말씀은 하나님의 심판에는 반드시 개별적 책임의 원리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은 어떻습니까? 야베스 길르앗이 총회에 올라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성읍 전체를 일괄적으로 제거의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누가 어떤 이유로 오지 않았는지, 누가 실제로 그 불참의 책임을 져야 하는지, 애초에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무엇이 정당한 판단인지를 묻기보다, 그냥 한 덩어리로 묶어서 마치 프레임을 짜 넣듯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들을 향해 칼을 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별이 아니라 집단적 광기이고, 공의가 아니라 성급한 폭력입니다. 이것은 거룩한 열심이 아니라, 율법의 이름을 빌린 불의한 열심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미 하나님을 왕으로 모셔야 하는 하나님의 백성다운 판단은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분별하지 않으면 사람은 이렇게까지 잔인해질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공동체를 위한다고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사람을 수단으로 삼고 생명을 계산대에 올려놓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분별없는 열심이 첫 번째 실수를 만들었다면, 그 실수를 덮으려는 또 다른 시도가 두 번째 죄를 낳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을 떠난 길의 특징입니다.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반드시 다음 잘못을 요구하게 됩니다.
2. 하나님의 뜻을 떠난 해결책은 반드시 더 큰 죄를 낳게 된다.
본문 10절부터 12절을 보면, 이스라엘은 용사 만 이천 명을 그리로 보내어 처녀 외에는 모든 이들을, 어린아이까지도 남김없이 다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그러고선 그들의 딸인 처녀 사백 명을 노예처럼 끌고 와 베냐민 지파의 남은 남자들에게 줍니다. 이 장면은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많은 배도와 죄악 중에서도 가장 마음이 무거워지는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스라엘은 베냐민 지파를 살리겠다는 이유로 또 다른 성읍을, 그 가정들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지파가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도, 다른 한 가정을 아무렇지 않게 희생시키고 있습니다. 공동체를 보존하겠다는 명분으로 또 다른 공동체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을 떠난 해결책이 가져오는 무서운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떠난 해결책은 결코 문제를 끝내지 못합니다. 잠깐 봉합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지, 반드시 또 다른 죄와 상처를 만들어 냅니다. 지금의 이스라엘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대하고 있지 않습니다. 사람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생명으로 보고 있지 않습니다. 그저 자기들이 만든 위기를 수습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고 있습니다. 부모들과 어린 자녀들은 다 죽이고, 그중 결혼할 수 있는 그들의 딸들인 처녀만 납치하는 이 모습은 과연 이들이 정말 하나님의 공동체가 맞는지, 최악 중의 최악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죄로 인한 악한 결과는 이처럼 번져갑니다. 죄는 결코 한 자리에서 끝나지 않고 다른 영역으로 전염됩니다. 그렇게 우리 삶에도 하나님의 뜻을 떠난 선택 하나를 허용하기 시작하면, 그다음에는 더 큰 왜곡이 따라오고, 더 큰 죄가 따라오고, 나중에는 감당할 수 없는 혼란이 찾아오고야 맙니다. 그래서 죄는 절대로 인간적인 방식으로 수습되지 않습니다. 죄는 하나님 안에서만 다루어져야 합니다. 죄를 처리하고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또 다른 죄를 허용하면, 그것은 해결이 아니라 확대입니다. 아픈 것을 덮는다고 해서 치료되는 게 아니라 더 깊은 병이 되듯 말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문제가 빨리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온전히 하나님의 뜻대로 다루어지는 것인 줄 믿습니다. 신앙은 반드시 효율이 좋아야 하거나 결과만 괜찮으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결과뿐 아니라, 그 결과에 이르는 과정도 보십니다. 그리고 그 길이 하나님의 뜻에 합한 길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문제 앞에서 ‘이 방법이 하나님의 뜻에 합한지’를 먼저 점검하며, 어떤 상황 속에서도 먼저, 왕이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비극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뜻대로 분별하지 못할 때 어디까지 무너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사사기 전체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영적 원리입니다. 그래서 사사기의 마지막 결론은 늘 한곳으로 모입니다. 사람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할 때, 그 끝은 반드시 혼란과 상처와 무너짐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소견은 언제나 부분적이고, 인간의 판단은 언제나 제한적이며, 인간의 열심은 언제든지 자기 확신으로 기울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자기 열심이나 자기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내 삶의 주인이자 왕이신 하나님의 뜻 아래 사는 사람이 바로 진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말씀은 우리를 단순한 도덕적 반성으로 끝나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도덕심이나 어떤 더 강한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영적 눈이며,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을 낮추고 겸손해야 하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결국 이러한 깨달음은 우리를 참된 왕이신 하나님 앞으로 다시 데려다 놓습니다. 사사기에서 일어난 모든 비극은 뛰어난 인간 왕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난 비극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모두 이 사사기 말씀의 끝자락에서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는 은혜의 계기를 맞이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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