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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30일
2026-10-27 08:15:00
꿈미
조회수   18

과정과 결과 모두, 주를 위하여

 

일시 : 2026년 10월 30일

본문 : 사도행전 9:32-35

 

 

요즘 우리는 터치 몇 번으로 필요한 물건을 주문하면 다음 날 새벽 문 앞에 물건이 도착해 있는 참 편리한 시대를 살아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문 앞에 놓인 택배 상자를 열어볼 때, 우리의 관심은 오직 우리가 받은 물건에만 쏠려 있습니다. '내가 주문한 물건이 파손 없이 제대로 왔는가, 내가 원하던 그 결과물이 맞는가'에만 온통 마음이 가 있습니다. 그 물건이 산지에서 어떻게 수확되었는지, 분류 작업을 한 이들과 어두운 새벽길에 무거운 상자를 들고 계단을 오른 배송 기사가 누구인지, 이런 것들은 크게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저 내 손에 쥐어진 '결과물'이 만족스러우면 그만인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의 신앙생활과 내면 깊은 곳에서도 똑같이 나타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와 간절히 기도하고 무언가를 열심히 행할 때조차, 본능적으로 '눈에 보이는 결과'에만 집착하곤 합니다. ‘내 병이 나았는가, 내 자녀의 문제가 해결되었는가, 내가 계획한 일이 성공했는가’를 생각합니다. 결과만 손에 쥐어지면, 정작 그 일을 이루신 분이 누구이신지, 왜 그 은혜를 주셨는지는 쉽게 잊어버리곤 합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베드로가 여러 지방을 두루 다니다가 룻다라는 곳에 사는 성도들에게 내려갔을 때 일어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베드로는 8년 동안이나 침상에 누워 있던 중풍병자 애니아를 만나게 됩니다. 베드로가 그에게 일어나 자리를 정돈하라고 선포하자, 애니아는 그 자리에서 즉시 일어나 고침을 받습니다. 이 장면은 복음서에서 친구들이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예수님께 데리고 왔을 때, 예수님께서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말씀하시며 고쳐주셨던 그 감격스러운 사건을 고스란히 떠올리게 합니다. 오늘 이 애니아의 치유 사건을 통해, 결과에만 매몰되기 쉬운 우리의 삶을 십자가의 관점으로 어떻게 재해석해야 하는지 함께 살펴보고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1. 모든 일의 시작과 중심은 오직 예수님이어야 합니다.

 

본문 34절에서 베드로는 다짜고짜 "일어나 자리를 정돈하라!"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의 입술에서 가장 먼저 터져 나온 선언은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자리를 정돈하고 일어나는 기적의 결과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신다'라는 주권적 은혜의 원인이 가장 먼저 선포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일을 계획하고 감당하며 살아갑니다. 가정에서 가족을 돌보고, 일터에서 땀 흘려 일하며, 교회 안에서 여러 봉사와 사역을 감당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자주 '결과론적인 태도'에 빠지곤 합니다. 일이 잘 풀리고 좋은 성과가 나타나면 은근슬쩍 내 노력과 열심을 자랑스러워하고, 반대로 결과가 더디면 금세 낙심하여 주저앉습니다. 그 일이 누구로부터 임한 것이며, 누구 때문에 가능한 것이고, 궁극적으로 누구를 위한 일인지 그 중심을 놓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에게 한 번 정직하게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많은 일과 예수 그리스도는 과연 어떤 관계가 있는가?“

오늘 내가 숨 쉬고 살아가는 것, 내가 나다울 수 있는 것, 내가 일상에서 누리는 평안과 건강과 사역의 모든 자리가 전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은 은혜, 거저 주신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 행할 모든 일과 우리가 전할 모든 말들 한가운데에는, 내 이름이나 내 능력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선명한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2. 주님의 영광으로 흘러가는 결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일어난 은혜의 결과는 결코 '나 개인의 만족'에서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자신을 옥죄던 침상을 정리하고 두 발로 우뚝 섰을 때, 애니아 개인에게 그것이 얼마나 놀라운 기적이며, 기쁨이었겠습니까? 말로 다할 수 없는 기쁨이었을 것입니다. 아마 밤새도록 동네를 뛰어다니며 자신의 건강해진 몸을 만끽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본성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하던 문제가 해결되고 삶에 형통이 찾아오면, 우리는 ‘아, 이제 살 만하다. 내 소원이 이루어졌다!’라며 기뻐하고 안도하는 것으로 그 사건의 마침표를 찍으려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조차 철저히 '나를 위한 결과'로만 소비해 버리는 이기적인 한계가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애니아의 기쁨으로 이야기를 끝맺지 않습니다. 본문 35절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오니라." 애니아가 고침 받은 사건은 애니아 한 사람의 행복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어선 애니아의 삶을 통해, 그를 고치신 살아계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온 지역에 드러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이전까지 주님을 알지 못하던 룻다와 사론의 수많은 영혼이 복음 안으로 걸어 들어오게 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오늘 계획하고 소망하는 많은 일을 돌아보십시오. 자녀가 잘되고, 사업장과 일터가 안정되며, 질병에서 회복되는 것, 이 모든 기도 제목이 그 자체로 최종 목적이고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 내 문제가 해결되고 내가 기뻐하는 것으로만 신앙생활이 마무리된다면, 우리는 여전히 십자가의 부르심을 절반밖에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삶의 침상에서 일으켜 세우시는 이유는, 건강하게 일어선 우리의 삶을 보고 누군가가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함입니다. 나의 회복과 형통이 나를 높이는 왕관이 아니라, 나를 고치신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비추는 거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내 눈앞의 결과에 일희일비하고, 은혜를 입어도 내 기쁨과 안락함이라는 작은 울타리 안에 머물고 싶어 하는 참으로 연약한 자들입니다. 우리의 의지나 다짐만으로는 내 삶의 중심에 예수님을 모실 수도 없고, 내 기쁨을 넘어 하나님의 영광을 구할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이셨으나 자기 자신을 위한 영광이나 안락함을 구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고 죽어가는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손과 발이 못 박히시며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가장 처절한 자리로 내려가셨습니다. 주님이 그 십자가에 매이셨기에, 죄의 중풍병에 걸려 누워 있던 우리가 오늘 자유케 되고 생명의 자리에 서게 된 것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의 가정과 일터로 나아갈 때 내가 해야 할 일의 목록과 결과부터 먼저 계산하려는 조급함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살게 하신다,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나는 한 걸음도 걸을 수 없다"라고 고백하며, 우리의 말과 행동의 가장 첫 자리에 주님을 모셔 들이십시오. 그리고 주님께서 오늘 우리의 삶에 허락하시는 작은 응답과 기쁨의 열매들이 있다면, 거기에만 안주하여 마침표를 찍지 않길 바랍니다. 나를 고치시고 일으키신 주님의 은혜가 내 삶을 통해 흘러가, 내가 곁에 있는 가족과 동료와 이웃들이 주께로 돌아오게 하는 거룩한 통로로 쓰임 받기를 소원하십시오. 오직 나를 도우시는 십자가의 능력 안에서, 나를 위한 결과가 아닌 주님의 영광을 위한 열매를 맺어가는 복된 하루를 살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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