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함께 서 계시는 주님
일시 : 2026년 10월 23일
본문 : 사도행전 7:54-8:3
비 오는 날 비행기를 타 보면 활주로를 달려 날아오르는 동안 창밖은 온통 회색 구름뿐입니다. 그런데 구름층을 뚫고 올라가는 순간, 눈부신 햇빛이 쏟아집니다. 해는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었습니다. 다만 비구름 아래에서 보이지 않았을 뿐입니다.
우리는 흔히 고난의 비가 그쳐야 영광의 해가 뜬다고 생각합니다. 스데반에게도 비는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의 설교가 끝나고 돌아온 것은 회개가 아니라 돌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은 이 장면을 패배의 기록으로 남기지 않습니다. 돌이 날아오는 바로 그 자리에서 하늘이 열리고, 교회가 흩어지는 바로 그때 복음이 퍼져 나갑니다. 그렇다면 고난 한복판에서 성도가 보는 영광은 무엇일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그 답을 알아 참된 영광을 누리기를 축복합니다.
1. 세상이 귀를 막을 때 하나님은 하늘을 여십니다.
스데반의 설교를 들은 공회원들이 마음에 찔렸다고 오늘 말씀 54절은 기록합니다. 이 표현은 사도행전 2장에서 오순절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무리에게도 쓰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말로 ‘마음에 찔렸다’고 번역한 두 표현을 각각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전혀 다른 단어입니다. 2장의 찔림이 회개로 이어졌다면, 오늘 본문의 단어는 ‘톱으로 켜다’라는 뜻으로 분노에 마음이 갈라졌다는 의미입니다. 같은 말씀 앞에서 어떤 이는 무너지고, 어떤 이는 이를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땅에서 스데반을 향한 분노가 커지고 있을 때, 스데반은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주목했고,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 우편에 서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의 설교는 영광의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보이셨다는 말로 시작했는데, 이제 그 영광이 성전 밖에 선 스데반에게 나타났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56절에 예수님께서 서 계셨다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보통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고 말씀합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을 보면 땅의 법정에서 스데반이 서 있을 때, 하늘에서는 주님이 그의 증인으로 함께 일어서 계셨습니다. 누가복음 12장 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이 약속이 지금 스데반의 눈앞에 펼쳐진 것입니다.
우리도 세상 가운데 살다 보면 신앙 때문에 냉대받는 자리에 서기도 합니다. 직장에서 정직하게 일을 처리했지만 도리어 눈총을 받을 때, 가족이 나의 신앙을 비웃을 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섬김에 지칠 때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표정이 하나님의 판결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귀를 막는 세상 앞에서 성도에게 하늘을 여시고, 그 우편에 서신 그리스도를 보게 하실 줄 믿습니다.
2. 성도의 영광은 고난 속에서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스데반에게 주신 영광은 고난의 면제가 아니라, 그 고난 속에서 예수님을 닮게 하신 것입니다. 귀에 할례를 받지 못했다는 책망을 들은 무리는 이제 아예 귀를 막고 일제히 스데반에게 달려들었습니다. 그런데 57절의 ‘일제히’라는 단어는 사도행전 1장 14절에서 초대교회가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할 때 쓰인 말입니다. 한마음은 기도로도, 살인으로도 모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스데반을 성 밖으로 끌어내 돌로 쳤습니다. 예수님도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스데반의 마지막 두 기도는 십자가 위 예수님의 기도를 그대로 닮았습니다.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눅 23:46),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눅 23:34). 다만 예수님이 아버지께 드리신 기도를 스데반은 주 예수께 드립니다. 그리고 그가 돌에 맞아 처참하게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잠들었다고 기록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다는 이유로 돌에 맞을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억울한 오해, 험담, 배신은 오늘도 우리를 괴롭힙니다. 바로 그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인간적인 결심으로 쏟아낼 수 있는 기도가 아닙니다. 스데반이 그렇게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강해서가 아니라, 성령께서 그를 충만케 하시고,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 주님을 보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영광은 고난이 사라지는 데 있지 않고, 고난 속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이 드러나는 데 있습니다. 고난 가운데 있습니까? 억울하고 마음이 힘든 가운데 있습니까?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기 바랍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주님을 보게 하시고, 위로케 하실 줄 믿습니다.
3. 하나님은 흩으심 속에서도 멈추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하심은 스데반 한 사람의 죽음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죽음은 더 큰 박해의 시작이었지만, 동시에 더 넓게 퍼지는 복음의 시작을 보여줍니다. 스데반의 죽음으로 시작된 박해가 교회를 흩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흩어짐을 복음의 씨를 뿌리는 일로 바꾸십니다. 스데반이 죽은 그날부터 예루살렘 교회에 큰 박해가 일어났고, 사도 외에는 모두 유대와 사마리아로 흩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박해를 통해 교회가 아직 가지 않았던 그 증인의 길로 그들을 보내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스데반의 죽음에 대한 슬픔도 기록합니다. 사도행전 8장 2절입니다.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믿음은 슬픔의 눈물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사울이 교회를 잔멸하려고 집집마다 들어가서 성도를 끌어내었음을 8장 3절에 분명히 기록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이사와 실직, 질병과 관계의 상처로 원치 않는 곳으로 옮겨갈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그 자리가 너무나도 힘들고, 이해가 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는 결코 하나님께로부터 버려진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씨를 뿌리시는 밭인 줄 믿습니다. 고난의 이유를 다 알지 못해도, 그 고난이 쉽게 끝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의 일하심이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만은 기억하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은 신실하십니다. 그 신실하신 주님께서 오늘도 우리의 삶 가운데 동일하게 역사하고 계심을 믿으며, 모든 성도가 자신의 자리에서 주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며 살아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돌로 시작된 본문은 흩어짐으로 끝납니다. 스데반은 죽었고, 교회는 쫓겨났고, 사울은 성도를 끌어냈습니다. 고난은 하나도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바로 그 한복판에서 영광을 보았습니다. 열린 하늘에 서 계신 주님, 원수를 위해 기도하는 그리스도의 형상, 흩어짐을 씨를 뿌리는 것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손입니다. 우편은 성경에서 권위와 영광의 자리를 뜻합니다. 돌도, 박해도, 사울도 모두 그 하나님 우편에 계신 주님의 다스림 아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우리 가정에도 고난 한복판에서 하늘을 열어 그리스도를 보게 하시고, 어떤 자리에서든 담대히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증인으로 세워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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