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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29일
2026-10-27 08:13:34
꿈미
조회수   22

지금 여기에서의 사명

 

일시 : 2026년 10월 29일

본문 : 사도행전 9:20-31

 

 

세상 사람들이 오랜 삶의 경험을 통해 마치 변치 않는 진리처럼 주고받는 서글픈 말 한마디가 있습니다. 바로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다."라는 말입니다. 이 짧고 차가운 문장 안에는 누군가를 향했던 간절한 기대와 그 기대가 무참히 무너졌을 때 찾아온 깊은 실망과 좌절의 한숨이 고스란히 배어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며 마주하는 현실이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의 타고난 기질과 성정, 수십 년간 굳어진 습관과 가치관은 좀처럼 변하지 않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다짐하고 잠시 변하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상황이 바뀌면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 버리는 일을 우리는 수없이 목격합니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상처를 입은 경험이 쌓이다 보니, 어느덧 우리 마음에도 ‘사람은 절대 안 변해.’라는 단단한 불신의 벽이 세워지곤 합니다. 동의합니다. 인간의 힘과 노력으로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거나 나 자신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사람의 영역에서는 불가능한 그 일이 주권적인 하나님께서 개입하실 때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사람이 사람을 고쳐 쓸 수는 없지만,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부서지고 망가진 인생을 완전히 새롭게 빚어 쓰십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바울, 그 바울이 바로 살아 있는 증거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에게 바울이라는 이름은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스데반을 죽일 때 앞장섰고, 믿는 자들을 잡아 가두며 교회를 잔멸하려 했던 장본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랬던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후 예루살렘으로 올라와 제자들과 사귀고자 했을 때, 제자들은 다 두려워하며 그가 참된 제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도무지 믿지 못했습니다. 바로 그 얼어붙은 불신의 자리에서, 바나바가 나서서 바울을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님을 보았는지, 또 다메섹에서 어떻게 담대히 예수님의 이름을 전했는지를 설명하고 보증해 줍니다. 그러자 비로소 굳게 닫혔던 문이 열리고, 바울은 제자들과 함께 출입하며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오늘 이 바울과 바나바의 모습을 통해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두 가지 은혜의 음성을 듣기 원합니다.

 

1. 오늘, 지금 제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먼저 본문 20절부터 25절을 살펴보면, 회심 직후 다메섹에 머물던 바울의 놀라운 행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겨지고 성령으로 충만해진 바울은 즉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기 시작합니다. 어제까지 예수 믿는 자들을 잡으러 왔던 사람이 오늘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외치니, 다메섹의 유대인들은 큰 혼란에 빠졌고 급기야 공모하여 바울을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켰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바울을 살려낸 이들이 누구입니까? 25절을 보면 "그의 제자들이 밤에 바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 내리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바울이 다메섹에 정확히 얼마나 머물렀는지 그 세세한 일정을 다 설명하지 않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보여줍니다. 바울이 다메섹에 머무는 그 짧은 기간 동안, 그곳에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바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 아래로 피신시켜 줄 만큼 복음으로 끈끈하게 결속된 '제자들'이 세워져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흔히 사명을 감당한다고 할 때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갖추어진 나중'을 기약하곤 합니다. ‘내가 성경 지식이 조금 더 쌓이면, 내 삶의 형편과 재정이 조금 더 안정되면,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그때 전도하고, 제자 삼는 삶을 살아야지’ 하고 뒤로 물러서는 연약함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핑계로 오늘 해야 할 순종을 유예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달랐습니다. 그는 신학적인 체계를 완벽히 다듬거나 안전한 환경이 보장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향한 살해 위협이 도사리는 다메섹 한복판에서, 자신이 만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즉시 증언했고, 그 짧은 시간 안에 생명을 나누는 제자들을 길러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제자 삼는 사명은 언젠가 다가올 미래의 과제가 아니라 '오늘, 지금, 여기'에서 감당해야 할 현재의 부르심입니다. 물론 내 입술의 부족함과 삶의 연약함을 보면 입을 열기가 두렵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완벽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쳐 쓸 수 없던 나를 찾아오사 십자가의 보혈로 죄를 씻으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신 그 은혜가 내 안에 이미 충분하기에, 우리는 지금 서 있는 가정과 일터, 그 다메섹과 같은 삶의 현장에서 오늘 곧바로 예수를 증거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의심과 두려움을 넘는 품어 줌

 

두 번째로 우리가 주목할 모습은 26절 이하에 나타난 예루살렘 교회의 반응과 바나바의 역할입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와서 제자들과 사귀려 했을 때, 성도들이 그를 두려워하며 피한 것은 인간적으로 너무나 당연한 반응입니다. 바울이 위장 잠입하여 자신들을 일망타진하려는 것은 아닌지 얼마나 공포스러웠겠습니까? 피 흘리는 박해를 직접 겪었던 당사자들에게 '박해자 바울의 회심'은 머리로도 가슴으로도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사건이었습니다.

이 모습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도 정확히 겹칩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극적인 회심이나 변화를 마주할 때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합니다. ‘저 사람이 정말 변했을까? 또 예전처럼 상처 주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이 앞섭니다. 특히 거짓된 가르침과 이단이 기승을 부리고 교회를 어지럽히는 오늘날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는, 영적으로 깨어 분별하고 경계해야 할 책임이 있기에, 낯선 이나 과거에 문제가 있었던 이를 신뢰한다는 것이 더욱 어렵고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나를 보호하고 공동체를 지키려는 방어기제가 먼저 작동하는 것은 우리의 자연스러운 한계입니다.

하지만 성도 여러분, 경계와 분별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할 복음의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이 역사하시면 그 어떤 죄인이라도 변할 수 있다’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믿음입니다. 만일 우리가 "사람은 절대 안 변해"라는 세상의 격언에 갇혀 누군가의 변화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해 버린다면, 우리는 사실상 그 사람을 불신하는 것을 넘어 사람을 바꾸시는 십자가의 능력을 불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두가 두려움에 떨며 바울을 밀어낼 때, 바나바는 한걸음에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바울의 삶에 일어난 주님의 역사를 자세히 듣고, 공동체 앞에 서서 그의 변화를 변호하고 이야기해 주는 다리가 되어 주었습니다. 만약 바나바가 없었다면, 이방인의 위대한 사도 바울의 사역은 시작부터 깊은 고립 속에 갇혔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또한 공동체 안에서 누군가를 위해 이야기해 주고 보증해 주는 바나바가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우리가 상처 입을 두려움을 이기고 누군가를 신뢰할 수 있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우리의 '참된 바나바'가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는 수만 번 다짐하고도 다시 죄로 돌아가는, 도저히 고쳐 쓸 수 없는 절망적인 죄인들이었습니다. 아무도 우리를 믿어주지 않을 때, 예수님께서 친히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책을 대신 지시고 성부 하나님 앞에서 "내가 내 피로 이 사람을 보증합니다"라고 변호해 주셨습니다. 그 십자가의 보증 덕분에 우리가 오늘 하나님의 가족으로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세상은 오늘도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다"라며 냉소하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마음의 성벽을 높이 쌓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사명 또한 내 삶이 다 정리된 나중으로 미루어 두라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 새벽,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를 다시 바라보기를 바랍니다. 도저히 가망 없던 박해자 바울을 찾아가셔서 복음의 일꾼으로 빚어내신 주님의 그 강권적인 은혜가, 동일하게 저와 여러분을 살리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다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으시고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십자가를 지셨으며, 의심 많고 연약한 우리를 끝까지 신뢰하시고 품어 주셨습니다.

오늘 하루, 내 부족함을 핑계 삼아 복음 전하는 일을 내일로 미루려 했던 안일함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으십시오. 내가 머물고 있는 바로 그 자리, 오늘 만나는 가족과 이웃에게 내 삶에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담대히 증거하는 사명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 내 경험과 상처라는 좁은 틀에 갇혀 누군가를 재단하고 밀어냈던 완악한 마음을 주님의 은혜로 녹여 주시기를 구하십시오. 영적인 분별력은 잃지 않되, 사람을 변화시키시는 주님의 크신 능력을 신뢰함으로 연약한 지체의 허물을 덮어주고 그 안에 시작된 작은 변화를 공동체 앞에서 따뜻하게 증언해 주는 '은혜의 바나바'로 살아가십시오. 그럴 때 오늘 본문 31절의 말씀처럼, 우리를 통해 가정과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해 가는 놀라운 은혜를 맛보게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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