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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26일
2026-10-23 16:05:49
꿈미
조회수   52

광야라는 교차로

 

일시 : 2026년 10월 26일
본문 : 사도행전 8:26-40

 

 

몇 해 전 하버드 대학교 연구팀에서 흥미로운 심리학 실험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연구진은 수많은 사람에게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고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는지를 물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오랫동안 계획하고 철저히 준비해서 성공을 이뤄낸 순간을 꼽을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사람들이 꼽은 삶의 가장 깊은 의미의 순간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세운 계획표대로 잘 풀렸던 때가 아니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길에서 뜻밖에 누군가를 만났거나 예측하지 못한 은혜와 도움을 입었던 순간이었습니다. 인생의 가장 깊은 신비와 기쁨은 우리가 쥐고 있는 수첩 속 계획표 안이 아니라, 그 계획표가 빗나간 ‘계획 밖의 자리’에서 찾아온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아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매일 삶을 제어하고 예측하려 애씁니다. 그러나 살다 보면 예고도 없이 인생의 ‘광야’를 맞닥뜨리게 됩니다. 북적이고 활기차던 자리를 떠나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쓸쓸한 광야로 내몰릴 때가 있습니다. 사업의 실패일 수도 있고, 갑작스러운 건강의 이상이나 관계의 단절일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 마음속에는 절박한 질문이 솟구칩니다. "하나님, 왜 하필 지금입니까? 왜 하필 저를 이런 아무것도 없는 광야로 보내십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사도행전 8장의 주인공 빌립도 바로 그러한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당시 사마리아에는 전무후무한 대부흥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모이고, 병자가 고침을 받으며 성안에 큰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남기신 말씀처럼, 빌립은 사마리아 부흥의 한복판에 서 있던 하나님 나라의 주역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성공의 정점에서 하나님은 느닷없이 빌립을 불러내십니다.

 

1. 인도하심을 넘어, 방향에 순종하는 삶

 

이에 대한 빌립의 반응은 놀라울 만큼 단순합니다. "일어나 가서 보니." 그는 토를 달거나 항변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과, 그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것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임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날 수많은 신앙인이 성령의 체험과 은혜를 이야기하지만, 순간순간 성령의 인도하심에 온전히 삶을 던지는 사람은 드뭅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령 하나님의 안내 방식은 친절하게 모든 경유지와 최종 목적지를 보여주는 최신형 네비게이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그저 "일어나 광야로 가라"는 방향만 제시하십니다.

우리는 종종 완벽한 결과와 안전이 보장될 때만 순종하려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보장된 결과가 아니라 은혜의 방향입니다. 나의 생각과 계산을 내려놓고 그 방향에 발을 내딛는 삶, 그것이 복음이 이끄는 참된 순종의 삶입니다.

 

2. 광야에서 만난 예비된 은혜

 

빌립이 순종하여 다다른 광야 길에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에티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내시였습니다. 이 에티오피아 내시는 오직 하나님을 예배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당시 왕복 수개월이 걸리는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예루살렘을 다녀가는 길이었습니다. 수개월의 삶을 바쳐 예배를 드렸지만, 그의 심령은 여전히 갈급했습니다. 돌아가는 수레 안에서 이사야서를 읽고 있었으나,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깨달을 수 없다"라며 안갯속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던 광야 한복판에서 빌립과 내시의 두 삶이 교차합니다. 사모함으로 걸어왔지만 답을 찾지 못했던 사람과, 이유도 모른 채 순종하여 걸어온 사람이 정확한 시간, 정확한 장소에서 만난 것입니다. 빌립은 이사야 53장의 고난받는 어린양의 말씀으로부터 시작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합니다. 내시는 광야 한복판에서 복음을 깨닫고 세례를 받았으며, 본국으로 돌아갈 때 기쁘게 길을 갔습니다(39절).

 

 

오늘 사도행전 8장 본문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두 개의 불확실한 순례길이 겹쳐 있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는 이유도 모른 채 걸어간 빌립의 '순종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정성을 다했으나 확신을 얻지 못했던 내시의 '사모함의 길'입니다. 빌립에게 그 광야는 "하나님, 왜 하필 이 부흥의 때에 저를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보내십니까?"라는 질문의 자리였습니다. 반면 내시에게 그 광야는 "그토록 갈망하며 예배드렸건만, 누가 나를 도울 수 있을까?"라는 갈증의 자리였습니다. 인간의 눈에는 그저 황량하고 텅 빈 벌판에 불과했지만, 실상은 하나님께서 그 두 사람을 위해 오차 없이 예비해 두신 '은혜의 교차로'였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에 이해할 수 없는 광야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습니까? 사람도, 위로도, 명확한 답도 보이지 않아 막막합니까?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걷고 있는 그 불확실한 순종의 길과 사모함의 길 끝에는 하나님이 이미 예비해 두신 은혜와 만남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결과를 미리 계산하려 하지 말고, 오늘 나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일어나 가는’ 한 걸음의 순종을 내딛길 바랍니다. 그 순종의 걸음을 통해 누군가가 생명을 얻고, 훗날 하나님 나라에서 "당신의 순종 때문에 내가 구원을 받았습니다."라는 영광스러운 고백을 나누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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